홀 아르바이트 하다 요리 매력 느껴
日·伊서 경험 쌓으며 셰프 자리매김
세계 요리 특성 자신의 방식과 조합
식감 일품 ‘단새우 파이티’ 시그니처
한우·굴 조합 ‘비프…’도 꼭 먹어봐야
“절제된 미학속에 풍부함 담아낼 것”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혼자 유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동네 레스토랑의 홀 서빙이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주방의 세계를 가까이서 보게 됐다. 홀과는 전혀 다른 분주함과 리듬, 항상 풍겨 나오던 맛있는 냄새, 쉬는 시간 주방에서 들려오던 라디오 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셰프들의 집중한 모습이 멋지게 보였다. 가끔 보이는 거칠고 긴장된 분위기마저도 압도적인 에너지와 멋으로 느껴졌다. 홀에서 일하면서 계속 주방과 요리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고 그 모습이 인상 깊었는지 직접 주방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요리와 전혀 관련 없는 공업고등학교 건축과를 졸업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요리사가 되겠다는 뚜렷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요리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배웠다. 조금씩 익힌 일본어 덕분에 23살에 도쿄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첫 해외 경력을 시작할 수 있었고 31살에는 이탈리아 현지로 건너가 직접 일할 기회도 얻었다. 비전공자이자, 요리학교 출신도 아니었기에 모든 과정은 늘 도전이었고 하나하나가 간절한 경험이었다. 지금의 윤 셰프를 만든 건 이처럼 스스로 길을 만들며 계속 나아간 결과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줄라이는 오랜 시간 프렌치 파인 다이닝으로 자리해 왔지만 현재는 윤 셰프의 요리 철학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노베이티브 유러피언 퀴진’이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전통적인 소스와 기술, 이탈리아의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조리법, 일본의 섬세함, 그리고 한국적인 감칠맛까지 각국의 요리 문화에서 얻은 영감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조합한 요리를 선보인다.

첫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단새우 파이티’다. 인도네시아식 쌀 스낵인 파이티를 시금치와 쌀로 재해석해 만든 바삭한 셸에 프로마주 블랑과 발효 양배추 겔 소스를 채우고 그 위에 단새우, 허브, 샬롯 등으로 만든 타르타르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미니 양배추 잎을 덮어 귀여운 양배추 모양으로 완성한다. 겉보기엔 단순하지만 한 입 안에는 다양한 식감, 산미와 감칠맛의 균형이 숨어있다. 윤 셰프가 지향하는 절제된 외형과 풍부한 내면을 담은 요리다.

두 번째 시그니처 메뉴는 ‘비프 타르타르, 굴, 크리스털 캐비아’로 ‘오이스터 앤드 비프’라는 클래식한 조합을 재해석했다. 굴은 생으로 쓰지 않고 수분을 완전히 제거하듯 익혀 감칠맛을 응축시켰으며, 마치 천연굴소스처럼 작용한다. 여기에 한우 꾸리살을 다져 만든 타르타르, 올로로소 셰리와인, 콩테치즈, 버터로 만든 크루통을 함께 곁들여 입안에서 짜임새 있는 여러 맛이 차례로 느껴지도록 구성했다. 타르타르 위의 크림은 태우듯 졸여 깊은 맛을 낸다. 셰리 비니거로 산미를 더했으며 신선한 허브와 크리스털 캐비아가 전체적인 조화를 완성한다.
두 요리는 겉은 절제됐지만 안은 깊고 풍부한 요리를 추구하는 윤 셰프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메뉴다. 그의 요리 철학은 시간에 따라 계속해서 변화했다. 처음에는 유행하는 스타일을 좇거나 맛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기준, 또는 좋은 재료를 써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요리에 접근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에게 더 명확한 철학을 세우고 요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윤 셰프가 요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개념은 패션 용어인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겉으로는 꾸민 티 없이 절제되고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 속에는 치밀한 계산과 내공이 담긴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이다. 현재 그의 요리들도 겉모습은 단순하고 작아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7~8가지 이상의 조리 방식이 담겨 있다. 발효, 그릴링, 튀김, 퓌레, 젤리, 소스 등 하나의 재료를 다채롭게 표현해 한 입에 복합적인 감성을 전하는 요리를 추구한다. 절제된 미학 속에 풍부함이 깃들게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요리한다.

윤 셰프에게 요리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파인다이닝 셰프로서 요리를 바라볼 때 요리는 결국 정교한 작업물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고민과 계산, 기술이 담긴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요리를 바라보면 요리를 안다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적 감각을 가진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를 여행하며 다양한 요리를 맛보고, 그 맛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다시 찾아가며, 그 감각을 사람들과 나누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다. 그래서 윤 셰프는 요리를 할 줄 알고, 요리를 이해하는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하게 오랫동안 주방에 설 수 있는 요리사로 남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꼭 화려하고 치열한 무대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 없이 마음 편하게 요리할 수 있는 삶이 윤 셰프에게는 더 큰 목표이자 꿈이다.
유한나 푸드칼럼니스트 hannah@food-fantas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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