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면당한 ‘일반인’ 윤석열 전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를 나와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 사저에 도착했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된 지 일주일 만이자, 대통령 당선 이후 관저에 입주한 지 886일 만이다.
밝은 미소 속에 주먹을 불끈 쥐며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나눈 윤 전 대통령은 마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처럼 ‘Make Korea Great Again(다시 한국을 위대하게)’라 적힌 빨간 모자를 지지자에게 받아 착용하는 모습까지 포착됐다. 한남동 관저와 서초동 사저 일대는 윤 전 대통령 지지자와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모여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윤 전 대통령은 오후 5시7분쯤 관저에서 차량에 탑승한 채 이동을 시작했다. 관저 외부에선 대통령실 참모진과 대통령경호처 관계자들이 박수를 치며 윤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윤 전 대통령은 오후 5시9분쯤 관저 외부 정문 앞에서 내려 지지자들에게 다가갔다. 양복 차림으로 머리도 세운 윤 전 대통령은 손을 흔들면서 밝게 미소를 보였다.
윤 전 대통령은 청년 지지자들과 악수를 하고, 포옹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일부 지지자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앞서 보수 유튜버 신의한수 등 오후 3시부터 관저 인근 볼보빌딩 앞에서 윤 전 대통령 응원 집회를 개최했다. 주최 측은 “(떠날 때) 대통령이 청년들한테 말씀하실 것이란 이야기가 있다”며 신원 확인을 통해 청년 200여명을 모았다. 오전부터 퇴거를 기다린 지지자들은 ‘YOON AGAIN’ 등의 팻말을 든 채 윤 전 대통령 이름을 연호했다. 경찰 비공식 추산 1500명이 한남동 일대에 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지지자로부터 ‘Make Korea Great Again’라고 적힌 빨간색 모자를 받아쓰기도 했다.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눈 윤 전 대통령은 취재진 앞에서 별도의 메시지 없이 차량에 탑승해 이동을 시작했다. 윤 전 대통령은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옆에 앉은 김건희 여사가 보이기도 했다. 40∼60명의 전담 경호팀은 윤 전 대통령의 퇴거를 함께하면서 경호했다.
윤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은 오후 5시30분쯤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정문에 도착했다. 관저에 입주한 지 886일 만에 서초동 사저로 복귀한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고 김 여사와 차량에서 내린 뒤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며 천천히 이동했다. 한 중년 여성으로부터 꽃다발을 건네받기도 했다.
이날 사저 정문에선 찬반 시위대와 시민들이 엉키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일부 시위대가 서로를 향해 “매국노”라고 외치면서 “당당하면 덤비라”는 등 말싸움이 빚어졌으나, 경찰의 통제로 큰 충돌은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의 도착이 임박하자, 사저 앞 인도가 통제되면서 시민 수십명이 좁은 길에 몰려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주민과 시위대, 유튜버 등은 통행을 막지 말라고 경찰에 항의했고, 인파가 몰리면서 “이러다 이태원 참사 때처럼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날 현장에서는 한 중년 여성 지지자가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이송되는 일도 있었다. 경찰은 한남동 관저 인근에 기동대 4개 부대 약 260명, 서초동 사저 인근에 기동대 4개 부대·1개 제대 약 280명을 배치하고 경비를 강화한 상태다.
윤 전 대통령은 변호인단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그는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관저를 떠납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며 “우리 국익과 안보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지난 겨울에는 많은 국민들 그리고 청년들께서, 자유와 주권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밤낮없이 한남동 관저 앞을 지켜주셨습니다. 추운 날씨까지 녹였던 그 뜨거운 열의를 지금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 저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길을 찾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제가 함께 꿈꾸었던 자유와 번영의 대한민국을 위해, 미력하나마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고 덧붙였다.
윤 전 대통령은 당분간 사저에 머물며 14일부터 시작하는 내란 혐의 형사재판을 비롯해 수사기관의 소환 조사 요구에 대비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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