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 유무 따라 진화율 차이 극명
문제는 예산… 정부 지원책 절실”
“이번 영남권 산불에서 또다시 경험했잖습니까. 임도(林道) 확충은 필수입니다.”
남성현(67·사진) 전 산림청장(국민대 석좌교수)은 31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임도는 지상진압 효율성을 높이는 필수 인프라로 산불 확산을 저지하는 방화선 역할도 한다”며 “현재 시스템에서 임도는 산불을 조기에 끝낼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남 전 청장은 지난 40년간 남부지방산림청장, 국립산림과학원장, 산림청장 등을 역임하며 대형 산불을 10차례 이상 경험한 ‘산림 관리 전문가’다.

남 전 청장은 2023년 3월 경남 하동과 합천 산불을 비교하며 임도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같은 경남에서 발생한 산불이었지만 임도 유무에서 진화율이 갈렸다”고 했다. 경남 합천에서 이틀간 발생한 산불은 해가 지기까지 33대의 진화헬기를 투입하고도 강풍으로 진화율 10%에 그쳤다. 일몰 후 임도를 따라 지상진화에 나서 진화율을 92%까지 끌어올렸다.
반면 하동 산불은 28대의 헬기를 투입해 진화율을 46%까지 끌어올렸으나 지리산국립공원과 맞닿아 있는 여건으로 임도는 커녕 산세마저 험해 진화율은 겨우 63%에 달했다. 어쩔 수 없이 탐방로로 진화대원을 투입했는데, 당시 대원 중 1명이 가파른 산 중턱 부근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022년 경북 울진군 산불 때도 임도 덕에 수령 200∼400년된 금강송 8만5000그루가 보존될 수 있었다.
활엽수 낙엽층이 머금고 있는 ‘좀비 불씨’ 진압에도 임도가 큰 역할을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남 전 청장은 “우리나라 낙엽층 깊이는 최대 100㎝, ㏊당 300∼400t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산불의 연료로 활용되고 산불이 지표면 아래로 진행되는 ‘지중화’ 양상을 확산시키는데 임도를 타고 산불진화차량이 접근하면 충분히 불을 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산불 대응 과정의 문제점과 대책을 분석한 ‘산불백서’를 지난해 발간했다.
문제는 돈이다.
남 전 청장은 “산림청에선 이미 진화헬기 도입, 임도 확충 등에 대한 계획은 다 세워놨다. 그런데 실행이 안 되면서 정책은 종잇장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예산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임도 개설비는 1㎞당 3억5000만원 정도다. 그는 1년에 최소 2000㎞의 임도를 개설해야 산불 재난에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임도밀도는 ㏊당 4.1m로 일본(23.5m), 독일(54m)에 비해 턱없이 낮다.
사유림 산주들과 환경단체 설득도 임도 확충을 위한 과제이다.
남 전 청장은 “사유림 산주들은 임도를 내면 손해라고 보기 때문에 거부감을 갖고 있어 설득이 관건”이라고 했다. 임도를 개설하면 사업비는 국가가 70%, 지자체가 20%, 산주가 10%를 부담한다. 국가가 길을 내주는 것이니 소유주가 10%를 부담해야 한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남 전 청장은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임도는 사방사업처럼 재난시설로 접근해야 한다. 그러니 산주에 재정적 부담을 주지 않으면 설득할 수 있다”며 “국가가 80%, 지자체가 20%를 부담하도록 현행 제도를 바꾸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임도로 인해 산사태가 촉발된다는 환경단체의 주장도 일부 반박했다. 남 전 청장은 “임도를 만들면 여름철 산사태 가능성을 높인다는 주장에 일부지역의 경우 인정하지만 이번 영남권 산불을 봐라. 임도가 없는 지역은 피해 규모가 엄청나다. 결과적으로 4만㏊의 피해를 내며 역대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봄철 산불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남 전 청장은 “봄의 산은 5월 말까지 화약고다. 그런데 진화헬기는 다 정비 들어가 있고 대원들은 지쳐 있다”며 “언제 어디서 산불이 날 지 모르는데, 이렇게 대형산불을 거치면 현재 시스템으로는 장비·인력 즉시 투입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짚었다.
남 전 청장은 산불 예방·대응을 위한 지속적인 인력·장비 투자는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절실해졌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산불 예방 대책은 국가 재난 안전과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해야 합니다. 산불대책도 국방이나 국가안보 태세처럼 준비가 돼있어야 대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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