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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만 늦었어도… “대포 터지는 소리 나더니 다리 없어져” [뉴스 투데이]

입력 : 2025-02-25 18:02:17 수정 : 2025-02-25 23:34:54
안성=오상도·이예림·임성균·최경림·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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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세종고속도로 붕괴 현장

사고직전 통과 30대 가슴 쓸어내려
차량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담겨
주민 “굉음에 사람들 놀라서 울어”

피해자 10명 중 3명 중국인 파악
유족 “철저한 사고 원인 조사” 촉구

“‘우르르 쾅쾅’ 대포 터지는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봤더니 다리가 없어졌어요.”

 

25일 오전 경기 안성시 서운면 산평리의 국도를 지나던 백용해(32)씨는 느닷없이 들려온 굉음에 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봤다. 백씨는 공사 중인 교각 상판이 무너져 내려 뿌연 먼지를 내뿜으며 V자 모양으로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영화 속 장면을 마주한 듯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가슴을 쓸어내렸다. 불과 5초 남짓 되는 시간이었다. 충북 진천에서 천안의 납품업체로 향하던 백씨는 “차량이 흔들리더니 뒤편에서 대포 소리가 났다”고 말했다.

V자로 휘면서 붕괴 서울세종고속도로 천안∼안성구간 교량 건설 현장의 상판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뿌연 연기와 함께 약 5초 만에 붕괴하는 모습이 사고 전 교량 밑을 지난 차량 블랙박스에 담겼다. 사고는 상판 가운데 부분이 꺾이더니 곧이어 브이(V)자 모양으로 휘면서 붕괴해 아수라장이 됐다.(위부터) 연합뉴스TV 캡쳐

이날 오전 서울세종고속도로 천안∼안성구간 건설 현장에서 교각 상판이 무너지기 직전 교량 아래 국도를 지난 백씨의 차량 블랙박스에는 이처럼 붕괴 순간이 고스란히 담겼다. 상판들이 무거운 빨래가 걸린 가는 빨랫줄처럼 속절없이 가운데부터 축 처지면서 50여m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이날 오전 9시49분쯤 안성시 서운면 산평리 서울세종고속도로 천안∼안성구간 9공구 천용천교 교량 현장에서 교각에 올려놓은 상판 5개가 떨어져 교각 위에 있던 작업자 4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소방 당국은 굴삭기 등 중장비와 구조견을 투입해 콘크리트 더미에 매몰된 작업자들을 구조했다.

 

사고는 오전 9시50분 충남소방본부 상황실에 접수돼 구조작업이 이어졌다. 부상자와 희생자들은 인근 천안 단국대병원과 화성 동탄 한림대병원, 수원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로 옮겨졌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천둥벼락 같은 굉음에 놀라 창밖을 내다봤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최모(65)씨는 “집에서 닭 밥을 주다가 ‘우르르르 쾅’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리가 떨어지면서 먼지가 확 나더라. 뭔가 터지는 줄 알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인근에 거주하는 이모씨도 “소리가 큰 게 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막 놀라서 울고 그랬다”면서 “상판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니 하나가 무너지면서 연달아 때리면서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 당시 소리를 직접 들었지만 “저렇게 큰 게 무너진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5시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 장례식장에는 상판 붕괴 사고로 사망한 피해자 유족들이 하나둘씩 도착해 황망함을 감추지 못했다. 중국인 피해자의 형인 유족 A씨는 “나도 10년 교량 일을 했는데 이렇게 큰 교량이 무너졌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A씨는 “동생은 매사에 열심히 일해오던 사람”이라며 “미성년자인 아들이 기술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이제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산평리 소재 서울세종고속도로 천안~안성구간 9공구 천용천교 건설 현장에서 교량 연결작업 중 교각에 올려놓았던 상판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현장 모습. 연합뉴스

한국인 사망자의 사위인 B씨는 “4개월 된 손녀딸을 아주 예뻐하셨는데,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며 “무뚝뚝하시지만 함께 스포츠도 보고 맛있는 것도 만들어 먹는 살가운 아버지였다”고 울먹였다. B씨는 “이런 사고가 나면 반짝 뉴스가 나오다 금방 묻히는데, 조사를 철저히 해서 건설 현장에서 안전을 좀 더 신경 썼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붕괴한 상판들은 교량 하단에 엿가락처럼 휘어지거나 잘게 깨져 아수라장 같았다. 소방 관계자들이 상판 4∼5개가 뭉개진 현장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도로공사,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등 유관기관 관계자 100여명과 구조·소방대원들도 현장을 지켰다.

 

경기 안성소방서 관계자는 “사고 피해자 10명 중 4명이 사망했고, 5명은 중상이며 1명은 경상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피해자 10명 중 3명은 중국인(조선족) 노동자로 파악됐다. 소방당국은 이날 오후 2시21분 마지막 구조대상을 구조했으나 숨진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상판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편하중이 작용해 도미노처럼 붕괴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장은 “무너진 상판은 대들보 같은 역할을 하는 구조물”이라며 “이걸 다리 기둥 위에 올려다 놓는 작업은 중요하면서도 위험하기에 조금만 삐끗하면 무너져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상 두 개의 다리 기둥 위에 얹히는 기다란 상판은 일정 크기의 콘크리트 블록들을 연결해 만드는데 블록 안에는 강선이 들어간다.

소방대원들이 25일 경기 안성시 서운면 산평리 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장 교량 붕괴 사고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뉴스1

현장에 있는 공사관계자들은 침묵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형사기동3팀과 안성경찰서 소속 78명으로 꾸려진 수사팀 일부는 현장에서 시공사인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들을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다.

 

고용부는 산재예방감독정책관을 현장에 급파하고 관할 고용노동지청에서 현장 출동해 해당 작업과 이와 동일한 작업에 대해 작업중지를 명령했다.

 

고경만 안성소방서 화재예방과장은 브리핑을 통해 “아직 사고 원인으로 추정하는 건 없다”며 “무너진 상판들은 설치 중이어서 고정이 안 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현장을 방문한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사고 현장 수습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부탁했고,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인명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소방 관계자들은 이날 오후 3시30분을 전후로 철수를 시작했고, 고용노동부 등과 협업해 현장 보전을 위해 최소 인력만 남겨둘 예정이다.


안성=오상도·이예림·임성균·최경림·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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