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2021시즌부터 2023~2024시즌까지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모두 집어삼키는 통합우승 4연패에 빛나는 대한항공. 과거 챔피언결정전 7연패에 빛나는 삼성화재도 해내지 못한 전인미답의 영역을 밟은 ‘대한항공 왕조’는 2024~2025시즌 준비에서도 행운이 따랐다. 지난해 5월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서 열린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획득했다. 전 시즌 역순으로 구슬을 넣기 때문에 전체 140개의 구슬 중 대한항공의 몫은 단 5개. 무려 3.57%의 확률을 뚫어낸 대한항공의 1순위 지명권 당첨이었다.
마침 트라이아웃에는 2023~2024시즌 외국인 선수 랭킹 1,2위라고 할 수 있는 레오(쿠바)와 요스바니(쿠바)가 나란히 OK저축은행, 삼성화재와 재계약을 하지 못해 다시 시장에 나온 상황. 대한항공의 선택은 요스바니였다. 낮고 빠른 배구를 추구하는 대한항공의 팀 컬러에 높은 공을 선호하는 레오보다는 요스바니가 더 적합하다는 판단이었다. 요스바니는 아웃사이드 히터와 아포짓 스파이커 둘 다 소화할 수 있어 포지션 범용성도 더 낫다는 것도 선택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러나 요스바니 선택은 실패로 보였다. 개막 후 단 2경기만 소화하고 어깨부상으로 장기간 전열에서 이탈했다. 대한항공은 대체 외인으로 막심 지갈로프(러시아)를 기용한 뒤 4라운드부터 요스바니를 다시 코트 위로 불러왔지만, 그 위력은 지난해 삼성화재 시절에 비해 그리 신통치 않았다. 자연히 대한항공은 선두 경쟁에서 멀어졌다.

반면 2순위 지명권을 거머쥔 현대캐피탈은 레오를 선택했다. 마침 현대캐피탈은 토종 주포 허수봉이 리그 최고 선수 중 한 명에서 압도적인 NO.1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KB손해보험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주전 세터감인 황승빈을 데려오는 프런트의 기민함까지 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역대 최고 외인으로 꼽히는 레오의 합류는 현대캐피탈에겐 ‘화룡점정’이나 다름없었다.
외국인 선수 선택의 ‘나비효과’가 18일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나타났다. 이날 경기 전까지 승점 73(25승3패)로 선두인 현대캐피탈은 이날 상대인 2위 대한항공(승점 52, 17승11패)을 세트 스코어 상관없이 승리만 거두면 이후 남은 7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지을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지난 네 시즌 동안 정규리그 1위를 놓치지 않았던 대한항공으로선 오랜만에 상대의 제물이 될 위기에 처했다. 자존심에 크게 금이 갈 법한 상황에서 대한항공은 ‘왕조’의 자존심을 지켜냈다. 올 시즌 앞선 네 번의 맞대결에서 한 번도 이겨내지 못한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시즌 첫 승을 거둬내며 상대가 눈앞에서 축포를 터뜨리는 상황은 막아냈다.

승리의 일등공신은 단연 요스바니. 본 기자가 18일 오전에 출고한 ‘‘3.57%의 기적’ 대한항공의 트라이아웃 1순위 지명권, 요스바니가 아니라 레오를 선택했다면?’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기라도 한 것일까. 전체 1순위의 위용을 여지없이 드러내며 대한항공의 세트 스코어 3-1(25-19 25-13 22-25 25-19) 완승을 이끌어냈다.

요스바니의 시그니처인 묵직한 파워서브가 1세트부터 현대캐피탈 코트를 강타했다. 요스바니는 1세트에만 서브득점 3개를 작렬시키며 현대캐피탈 리시브 라인을 초토화시켰고, 공격에서도 66.67%의 높은 성공률로 6점을 몰아쳤다.
1세트에만 9점을 폭발시킨 요스바니의 활약을 앞세워 1세트를 가볍게 잡은 대한항공은 2세트에도 현대캐피탈을 몰아붙이며 더 쉽게 따냈다. 요스바니는 2세트도 무려 88.89%의 미친 공격 성공률로 8점을 몰아쳤다. 1,2세트 누적 서브득점 3개 포함 17득점, 공격 성공률은 77.78%.

반면 레오는 대한항공 목적타 서브의 주요 타겟이 되면서 공격이 크게 흔들렸다. 1,2세트 도합 리시브 효율 9.09%, 공격 성공률 23.08%에 단 3점에 그쳤다. 이날만큼은 레오보다는 요스바니가 전체 1순위에 어울리는 남자였다.
현대캐피탈도 이대로 물러서진 않았다. 3세트 들어 서브득점 2개 포함 83.33%의 공격 성공률로 8점을 폭발시킨 허수봉을 앞세워 한 세트를 따냈다. 세트를 내주긴 했지만, 요스바니는 3세트에도 혼자 11점을 터뜨리며 대한항공을 ‘하드캐리’했다.

4세트를 내주면 다시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이날 대한항공 선수단 전체는 절대 상대에게 축포를 터뜨릴 기회를 주지않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쳐있었다. 7-6에서 최민호의 2연속 속공을 정지석과 조재영이 연속으로 가로막아내며 9-6으로 달아나 승기를 굳혔다. 세트 중반에는 18-10까지 점수차를 벌린 대한항공은 올 시즌 현대캐피탈전 첫 승을 따냈다.
이날 대한항공의 공격을 책임진 요스바니의 이날 최종 성적표는 서브득점 3개, 블로킹 1개 포함 34점(공격 성공률 68.18%)을 기록했다.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은 이후 최고의 활약이었다. 반면 레오는 서브득점, 블로킹 없이 단 9점(34.62%). 레오의 올 시즌 첫 두자릿수 득점 실패일 정도로 최악의 부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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