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적인 두 업무 합쳐… 실패한 조직”
독일 연방정부에는 다른 나라에선 보기 힘든 ‘경제기후보호부’(BMWK)라는 중앙 부처가 있다. 2021년 12월 사회민주당(SPD)과 녹색당의 연립정부가 출범하며 기후변화 위기에 선제적 대응을 하고자 만든 부처로 그 장관은 내각 2인자에 해당하는 부총리다. 그런데 이 경제기후보호부가 탄생한 지 3년여 만에 해체될 처지에 놓였다.

17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독일 제1야당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는 집권 후 경제기후보호부의 경제 기능과 기후변화 대응 기능을 분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은 오는 23일 하원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CDU/CSU 연합이 약 30%의 지지율로 1위를 달리는 중이다.
메르츠 대표는 이날 한 뉴스 매체가 운영하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경제기후보호부 신설은 처음부터 잘못된 구상이었다”며 올라프 숄츠 현 총리와 연립여당을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로베르트 하베크 현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을 겨냥해 “애초에 경제 부처를 맡을 능력이 없었다”며 “실패한 장관”이라고 규정했다.
독일은 2021년 가을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오랫동안 지도했던 CDU/CSU 연합이 패하며 정권 교체가 이뤄져 SPD와 녹색당 주도의 연정이 출범했다. SPD 대표인 숄츠 총리는 녹색당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환경부 소관이던 기후변화 대응 업무를 떼어내 기존의 경제에너지부로 이관했다. 그러면서 부처 명칭을 경제기후보호부로 변경하고 그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하도록 했다. 2021년 12월 하베크 녹색당 대표가 초대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을 맡아 3년 넘게 내각의 수석 부처를 이끌어왔다.

하베크 부총리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환경 운동가 출신이다. 경제 분야에는 지식과 경험이 일천해 일찌감치 야당의 표적이 되었다. 그의 임기 동안 독일은 유럽연합(EU)을 선도하는 경제 대국이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성장이 둔화하고 활력을 잃었다.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물가의 영향이 컸지만 “경제 비전문가가 경제 정책을 책임진 탓”이란 야당의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투철한 탈(脫)원전주의자인 하베크 부총리가 2023년 독일에 남아 있던 마지막 원자력발전소의 폐쇄를 강행한 조치는 커다란 논란에 휩싸였다. 전문가들은 “원전의 수명 연장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에너지 분야에서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면 원전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고 주장했으나 그는 이를 묵살했다. 그러면서 “원전은 관련 비용이 이익보다 크다”고 고집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 미국 정부효율부(DOGE) 수장은 X(옛 트위터)에 “하베크는 바보”라는 조롱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독일 총선이 엿새 앞으로 가다온 가운데 1위 CDU/CSU 연합에 이어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약 20%의 지지율로 2위를 달리고 있다. 현 집권당인 SPD는 15%가량에 불과해 정권을 잃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