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외친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시라쿠사 남쪽 오르티지아섬 볼거리 풍성/아폴로신전·디아나분수 지나면 영화 ‘말레나’ 촬영지 시라쿠사 대성당 광장/아레투사의 샘·이카로스 등 그리스신화 살아 숨쉬어

하늘과 바다를 향해 날개를 활짝 편 남자. 금세 날아오를 것 같지만 결코 날 수 없다. 오른쪽 발목을 누군가의 단단한 손이 강하게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높이, 더 높이 날아보려다 그만 날개를 잃고 추락한 이카로스. 날고 싶은 인간의 꿈,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자만심을 대변하는 그의 신화를 따라 시라쿠사로 떠난다.


◆아르키메데스의 고향 시라쿠사
이탈리아 시칠리아 타오르미나에서 남쪽으로 1시간30분을 차로 달리면 카타니아를 거쳐 시라쿠사에 닿는다. 걸어서 20~30분 거리에 주요 여행지가 몰려 있고 풍광이 빼어나 시칠리아 여행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북쪽 고고학공원지구와 남쪽 오르티지아섬으로 여행지가 나뉜다. 구석구석 둘러보며 시라쿠사의 진정한 매력을 만끽하려면 최소 이틀 정도는 머무르는 것이 좋다.


오르티지아로 연결되는 움베르티노 다리 중간의 작은 공원에 남자가 오른손에 청동거울, 왼손에 나침반을 들고 바다를 응시한다. 그의 발밑에 적힌 한 단어는 유명한 ‘유레카(EUREKA)’. 바로 고대 그리스 수학자이자 철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아르키메데스 동상이다. 유레카에 얽힌 얘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히에론 2세는 신전에 바치는 왕관을 제작한 금세공사가 황금에 은을 섞은 것으로 의심, 아르키메데스에게 조사를 맡겼다. 고민하던 그는 목욕탕에 들어갈 때 물이 넘치는 것을 보고 물질의 밀도에 따라 비중이 다르다는 원리를 발견했고 벌거벗은 채 거리로 뛰쳐나가 ‘찾았다’는 뜻의 그리스어 “유레카!”를 외쳤다는 얘기다.


그리스인 조각상이 왜 시라쿠사에 있을까. 기원전 287년 무렵 태어난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이 시라쿠사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8세기부터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에 마그나 그라에키아, 즉 ‘대그리스’로 불리는 식민도시국가를 건설했는데 가장 먼저 정착한 곳이 시라쿠사다.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 메달 앞면에는 아르키메데스의 얼굴이, 뒷면에는 구의 부피를 구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을 기려 원기둥에 내접하는 구가 새겨져 있을 정도로 그의 업적은 엄청나다.



10여분 더 남쪽으로 걸으면 아폴로 신전을 만난다. 기원전 6세기 지은 도리아식 신전으로 수많은 전쟁과 지진으로 폐허가 돼 기둥과 벽체 일부만 남았다. 이런 엄청난 유적들이 발길에 채는 돌멩이처럼 흔하게 ‘툭툭’ 튀어나오는 모습이 경이롭다. 아폴로 신전 왼쪽 골목길로 들어서자 호객하는 상인들의 외침으로 활기가 넘친다. 시라쿠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피시마켓이다. 시라쿠사의 작은 어선들이 아침에 건져 올린 싱싱한 물고기들이 좌판에서 주인의 손을 기다린다.


◆영화 ‘말레나’ 주인공 만나는 대성당
겨울이지만 시라쿠사는 낮 기온이 섭씨 17도까지 올라 살짝 더위가 느껴진다. 패딩을 벗어 허리에 묶고 걸으니 서둘러 온 봄을 맞은 것처럼 발걸음이 살랑살랑 가볍다. 젤라토 하나 손에 들고 아폴로 신전을 지나 자코모 마테오티 쇼핑 거리로 들어선다. 길 위로 루미날레 시설이 있는 걸 보니 밤에 아름다운 조명이 거리를 물들일 것 같다. 오르막길을 끝까지 걸으면 아르키메데스 광장과 디아나 분수가 등장한다. 날이 맑아 파란 하늘을 배경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싱그럽다. 분수 가운데는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인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활과 활통을 메고 섰다. 로마신화에선 디아나로 불리는 그는 궁술의 신이자 수렵을 관장하고 야생동물과 약자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맛집이 몰려 있는 좁은 사베리오 란돌리나 골목을 지나면 사방이 탁 트이는 반원형 광장이 등장하고 햐안 대리석으로 치장한 시라쿠사 대성당이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시네마 천국’의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가 만든 영화 ‘말레나’에서 주인공 모니카 벨루치가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소리내며 걸어가던 곳이다. 오르티지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시라쿠사 대성당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건축양식이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래 기원전 5세기쯤 그리스인들이 도리아식으로 지어 아테네 여신에 바친 신전으로 7세기쯤 대성당으로 바뀌었다. 북아프리카 이슬람 세력이 점령한 9세기에는 모스크로 개조됐다가 11세기 노르만 왕조가 시칠리아를 정복한 뒤 다시 대성당이 됐다.



오르티지아는 1693년 대지진이 강타하면서 건물이 대부분 파괴됐는데 시라쿠사 대성당은 튼튼한 신전 기둥 덕분에 완파를 면했다. 1725년부터 바로크 양식의 거장 안드레아 팔마가 재건하면서 하나의 성당에 여러 시대 건축양식이 혼재된 지금의 건물이 됐다. 시칠리아는 다양한 민족이 거쳐 가 ‘문명의 나이테’로 부르는데 시라쿠사 대성당이 이를 대변한다. 대성당을 둘러싼 광장 건물들도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져 운치를 더한다.




대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신전의 기둥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에 탄성이 터진다. 한쪽에는 수호성인 산타 루치아의 왼쪽 팔꿈치뼈가 안치됐다. 나폴리 민요로도 유명한 산타 루치아는 4세기 초 실존 인물로 시라쿠사 출신. 순교자 아가타의 영험한 무덤에 기도한 뒤 어머니 병이 낫자 루치아는 결혼을 거부하고 기독교에 귀의한다. 화가 난 약혼자는 루치아를 집정관에게 고발했고, 결국 루치아는 두 눈을 뽑히는 끔찍한 고문을 당한 뒤 화형에도 죽지 않자 참수를 당했다. 대성당 광장 끝의 산타 루치아 알라 바디아 교회는 루치아가 순교한 장소에 세워졌다. 교회 안에는 건축 당시인 1608년 당대 최고의 화가 카라바조가 그린 작품 ‘성녀 루치아의 매장’ 복제품이 전시돼 있다. 진품은 시라쿠사 산타 루치아 알 세폴크로 성소에 있다.



◆지금도 날고 싶은 이카로스
대성당 광장을 지나 바닷가로 나서면 신비한 아레투사의 샘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고대 종이의 원료 파피루스가 무성하게 자라는 샘에는 오리가 나 좀 봐 달라며 시끄럽게 울어댄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이 바닷가에 있다니 신기하다. 재미있는 신화가 전해진다. 아레투사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는 님프. 아레투사에 반한 강의 신 알페이오스가 강제로 범하려 하자 아르테미스가 구름으로 감싸 보호했고 아레투사는 그 안에서 물로 변해 샘이 됐다. 알페이오스가 샘에 들어가 합치려 했지만 아르테미스는 땅을 갈라 그 틈으로 아레투사가 스며들게 만들었고 지하수가 된 아레투사는 시라쿠사까지 흘러서 샘으로 솟아올랐다는 얘기다.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전망 좋은 룽고마레 알페오 거리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는 여행자들이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커피와 스파클링 와인을 즐긴다. 거리는 오르티지아 최남단 요새 마니아체성으로 이어지고 그 옆 절벽에 눈이 의심되는 거대한 청동 조각상이 우뚝 서 있다. 이카로스 신화를 토대로 전 세계에 수많은 작품을 남긴 폴란드 조각가 이고르 미토라이의 작품이다. 특히 시칠리아에 그의 작품이 많이 있는데 이유가 있다. 그리스신화에 이카로스와 시칠리아가 함께 등장한다.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미노스왕의 환대를 받던 아테네 출신의 뛰어난 건축가이자 발명가 다이달로스의 자식이 이카로스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미노스왕이 흰 황소를 제물로 바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자 분노하며 왕비를 황소와 사랑하게 만들어 버렸고, 저주를 받은 왕비는 황소 머리에 사람 몸을 지닌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 왕비의 간음에 화난 미노스왕은 다이달로스를 시켜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인 라비린토스를 만들었고, 미노타우로스뿐만 아니라 다이달로스 부자까지 가둬 버린다.



다이달로스가 나무 황소를 만들어 왕비가 숨도록 도왔기 때문이다. 다이달로스는 밀랍으로 새의 깃털을 몸에 붙인 뒤 날아서 미궁을 탈출하지만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듣지 않고 계속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에 밀랍이 녹으면서 추락해 에게해에 빠져 죽었다. 그런 다이달로스가 계속 날아 도착한 곳이 시칠리아다.



오르티지아 이카로스를 자세히 보면 오른쪽 발목을 꽉 잡은 손이 보인다. 너무 멀리 날지 않도록 아들을 붙잡으려 했던 다이달로스의 간절한 손 같다. 스스로 날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지만 부질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타박타박 걸으며 아레투사 샘으로 돌아오자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쪽빛 이오니아해를 온통 붉은 파스텔톤으로 물들이며 바다로 떨어지는 태양. 뜻하지 않은 선물에 영혼마저 아름다운 수채화로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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