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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국’ 스웨덴과 한국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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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2-10 17:00:34 수정 : 2025-02-10 17: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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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주한미군 소속 병사 트래비스 킹(당시 이등병)이 무단으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당국에 따르면 흑인인 킹은 “미군 내에서의 학대와 인종차별을 피해 망명한 것”이란 주장을 폈다. 하지만 킹은 한국의 한 술집에서 만취 상태로 몸싸움을 벌였다가 징계를 받고 본국 송환이 예정된 상태였음이 드러났다.

 

미국 행정부는 킹의 신병을 넘겨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결국 2개월이 지난 같은 해 9월 킹은 북한에서 추방돼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보내졌다. 당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스웨덴 정부의 외교적 역할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평양에 대사관을 둔 스웨덴의 막후 노력이 킹의 석방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내비친 것이다.

나란히 세워진 태극기(왼쪽)와 스웨덴 국기.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스웨덴은 19세기 초부터 국제사회의 각종 현안에서 철저히 중립을 지켰다. 20세기 들어 터진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웨덴은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2차대전 때 스웨덴 주변의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나치 독일의 점령 통치를 받았고, 핀란드는 공산주의 소련(현 러시아)의 침략에 직면했다. 스웨덴은 독일이나 소련은 물론 미국, 영국과도 거리를 두며 오직 자국의 안전만을 추구했다.

 

전후 동서 냉전이 격화하자 스웨덴의 중립국 입지는 한층 더 굳어졌다. 1950년 한반도에서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터졌을 때 스웨덴은 의료진을 보내 한국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하지만 이후 1973년 북한과도 국교를 수립한 데 이어 1975년에는 서방 국가로는 처음 평양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그래서인지 북한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스웨덴에 SOS(구조 요청)를 보내곤 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1975년 북베트남(월맹) 군대가 남베트남(월남) 수도 사이공(현 호치민)을 점령하며 주(駐)월남 대사관에 근무하던 이대용 공사 등 우리 외교관 3명이 월맹 측에 의해 억류되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은 우방국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한때 베트남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프랑스는 물론 최근까지 월맹과 싸운 미국도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했다. 이에 중립국으로서 북한과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스웨덴이 중재자로 나섰다. 스웨덴의 노력에 힘입어 이 공사 등은 억류 5년 만인 1980년에 무사히 풀려날 수 있었다. ‘중립국’이라는 스웨덴의 지위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한 셈이다.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왼쪽)이 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한 스웨덴 중립국감독위원회(NNSC) 대표 리나 페르손 헤를리츠 해군 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전쟁기념사업회 제공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스웨덴은 기존의 중립 노선을 포기하고 미국 중심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했다. 나토 회원국이자 미국의 동맹국인 스웨덴을 전과 같이 중립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 정전협정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중립국감독위원회(NNSC)의 일원으로서 스웨덴의 역할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NNSC의 스웨덴 측 대표인 리나 페르손 헤를리츠 해군 소장이 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방문해 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백승주 회장에게 “앞으로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스웨덴 NNSC 대표단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다짐했다니,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과 스웨덴의 우정이 영원히 한결같기를 소망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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