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요금 인상만으론 역부족
무임승차 적자의 ‘늪’ 해법 없나
정부 분담 및 연령 상향 논의도
해외는 소득에 따라 차등 적용

노인 인구가 늘면서 무임승차로 인한 서울 지하철 손실금이 10년간 3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서울교통공사의 재정난 해소를 위해 올봄 지하철 요금을 150원 인상한다.
그러나 이번 인상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해결하긴 어려운 만큼, 근본 원인 중 하나인 경로 무임승차 제도 자체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요 대책으로 중앙정부가 재정을 지원하거나 노인 무임승차 연령을 상향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아예 무임승차 혜택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가운데, 해외 주요국 대부분은 노인 소득 수준에 따라 요금을 차등 적용하는 등 완전한 무임승차를 허용하고 있진 않다.
서울 노인 무임승차 10년간 3조…정부·他지자체 분담 필요
2일 세계일보가 서울교통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금은 4134억62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85%에 해당하는 3511억6700만원이 만 65세 이상 노인으로 인한 적자다.
지난 한 해 지하철을 무료로 탄 경로 인원은 2억3262만명으로, 전년보다 1149만명 늘었다. 코로나19로 외출이 자제돼 상대적으로 지하철 이용 인구가 줄었던 2020년과 비교하면 45%나 뛴 수치다. 노인 인구 증가로 무임승차 누적 손실금은 지난 10년간 3조원을 돌파했다.
불어나는 적자에도 공사가 무임승차 손실을 보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노인복지법 때문이다. 현행법에는 노인의 도시철도 무임승차 근거와 할인율을 명시하고 있지만, 국가가 해당 손실을 보전해야 한다는 조항은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따라 정부는 법적으로 국가가 재정을 지원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시는 공사의 재정난 해소를 위해 3월 내 지하철 기본 요금을 1400원에서 1550원으로 150원 인상할 계획이다. 이번 요금 인상으로 연간 1641억원의 추가 수익이 예상돼 공사의 적자 폭이 일부 완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단기적인 요금 인상만으론 전체 손실을 메우기에 턱없이 부족해 법 제·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령자의 이동 편의 증진을 위해 정부가 최대 50%선에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내용을 넣으면 이를 근거로 대도시권은 경로 무임승차 비용의 일부를 지원받고, 지하철이 없는 지역에선 그 지역에 맞는 특화된 이동 복지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노인들의 승하차역과 이동 동선을 분석해 인접 지자체와 무임승차 비용을 공동 부담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현재 서울시와 경기도 지자체들이 시행 중인 ‘기후동행카드’의 경로 무임승차 버전인 셈이다.
최 연구위원은 “수도권 지하철 이용객 중 수원과 성남, 고양, 과천 등에서 타는 노인들도 많다”면서 “어느 지역 시민들이 얼마나 타는지 비율 등을 파악해 무임승차 비용 일부를 해당 지자체들과 공동 분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인 기준 연령 상향 논의 탄력…대구·대전 ‘70세’ 선제 추진
노인 무임승차 대상인 ‘만 65세 이상’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논의도 탄력을 받고 있다.
‘만 65세 이상’이라는 기준은 지난 1981년 노인복지법 제정 이후 지금까지 44년째 그대로다. 그러나 의학기술 발전과 생활수준 향상 등으로 기대 수명은 66.7세에서 84.3세로 17.6세 높아졌다. 노인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데 이어 30년 후 50%에 근접하게 된다는 전망도 조정 필요성의 배경이다.
실제로 요즘 60~70대 상당수는 노인 취급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가 2023년 65세 이상 노인 31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들은 평균적으로 72.6세 이상을 노인으로 생각했다.
보건복지부의 ‘2023 노인 실태조사’에서도 노인 연령 기준을 평균 71.6세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섭 대한노인회장 역시 지난해 10월 노인 연령 기준을 현행 65세에서 75세로 단계적으로 올리자고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일부 광역시는 무임승차 연령 상향을 선도하고 있다.
대구시는 현재 만 65세인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2028년까지 매년 1년씩 조정해 만 70세까지 상향할 계획이다. 이는 노인복지법에서 정한 기준이 만 65세 ‘이상’이라는 점을 활용한 것이다. 대전시는 7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도시철도와 버스 등 대중교통 무료 이용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다만, 노인 무임승차 연령 상향은 노인의 이동권과 정년 연장 등 사회복지적 문제와도 긴밀히 연결되기 때문에 충분한 합의와 숙고가 필요하다는 데 중론이 모인다.

해외는 어떨까…‘무상’ 대신 소득별 차등 혜택·일부 할인
근본적으로 지하철 재정난을 해소하려면 ‘100% 할인’으로 운영되는 경로 우대 요금체제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노인의 소득 수준에 따른 차등 적용이나 이용 횟수·혼잡 시간 제한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세계 주요국에서는 일정 연령을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상 혜택을 제공하는, 이른바 ‘보편적 복지’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의 주요 주(州)에서는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대중교통 요금 할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뉴욕의 경우 지하철이나 버스 요금을 50% 할인해준다. 철도는 가장 비싼 시간대 요금의 50%를 할인한다. 뉴저지에서는 지하철 요금을 50% 할인받을 수 있다.
영국은 연금 수급 개시 연령에 해당할 경우 대중교통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중교통 요금 할인용 패스를 사용하면 주중 혼잡 시간대를 제외한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탈 수 있다.
프랑스도 혼잡 시간대를 피하면 60세 이상의 경우 대중교통 요금을 50% 할인해준다. 호주는 65세 이상 노인에 50% 요금 할인과 일일 무료 이용 혜택을 제공한다.
도시철도가 발달한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혜택 적용 연령이 높은 편이다.
도쿄에선 70세 이상 노인의 경우 1년에 한 번 실버패스를 사면, 도영 전철과 버스를 무료로 탑승할 수 있다. 패스 가격은 가구 소득에 따라 달라진다. 오사카는 버스와 지하철, 트램을 한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운영 중이다. 패스 갱신 때 약 3만원을 부담하고, 이용 횟수에 따라 추가 비용을 지불하게 돼 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65세부터인 노인 무임승차 적용 연령을 70세까지 단계적으로 올리면 관계 당국이나 시민 입장에서도 받아들이는 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해외처럼 피크타임이 아닐 때 할인 제도를 운영하거나 소득과 연령에 따라 할인율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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