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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주한 美 대사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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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1-27 16:07:03 수정 : 2024-11-27 1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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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에서 ‘해리스’ 하면 얼마 전까지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카멀라 해리스(60) 부통령을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해리스가 부통령으로 참여한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전 한국에서 ‘해리스’ 하면 곧 해리 해리스(68) 주한 미국 대사를 연상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듬해인 2018년 7월 부임해 2년 6개월 가까이 대사로 일한 해리스는 2021년 1월 미국 정권교체에 맞춰 본국으로 돌아갔다. 바이든 행정부의 주한 대사가 아직 내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미 국무부를 통해 바이든 측에 “새 대사가 올 때까지 한국에서 근무할 의향이 있다”는 입장을 전달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 대사. 뉴스1

해리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대사로 발탁됐다. 그가 공화당 지지자였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다만 트럼프는 미 해군 4성 제독 출신으로 인도태평양사령부 사령관까지 지낸 해리스의 저돌성과 추진력, 그리고 애국심을 높이 평가한 듯하다. 애초 호주 주재 대사로 내정된 해리스의 임지가 갑자기 한국으로 바뀐 것은 2018년 4월의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주한 대사가 된 해리스는 진보 성향의 문재인정부와 사사건건 다퉜다. 특히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큰 폭으로 인상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우리 외교·안보 당국과 말 그대로 치열하게 대립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시민단체는 물론 정치권으로부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일본인 총독을 보는 것 같다’라는 원색적 비난까지 들었다. 훗날 해리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사로서 개인 입장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전달하는 게 나의 임무”라는 말로 대사 시절 복잡했던 심경을 드러냈다.

 

비록 트럼프에 의해 임명됐으나 해리스가 트럼프의 뜻을 떠받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20년 6월 서울 광화문 주한 미국 대사관 건물 외벽에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BLM)라고 적힌 대형 배너를 내건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미국에선 조지 플로이드라는 이름의 흑인 남성이 절도 용의자로 몰려 백인 경찰관에 붙잡힌 뒤 가혹행위를 당한 끝에 숨진 사건에서 비롯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주한 대사관이 BLM 운동에 동참한 것이 알려지며 트럼프가 격분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해당 배너는 겨우 이틀 만에 철거되고 말았다. 이듬해인 2021년 5월 새로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의 국무부가 전 세계 미국 재외공관의 BLM 배너 설치를 허용하자 해리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참으로 잘한 일”이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 뉴스1

바이든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2021년 1월20일 해리스가 대사직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향한 뒤 약 1년 6개월 동안 주한 미국 대사 자리는 공석으로 있었다. 결국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인 2022년 7월에야 필립 골드버그 현 대사가 임명됐다. 그런데 2년 6개월 가까이 한·미 동맹의 관리에 힘쓴 골드버그도 트럼프 2기 행정부 임기가 시작하는 2025년 1월20일에 맞춰 대사에서 물러날 예정이라고 한다. 전례에 비춰보면 새 대사가 언제쯤 부임할 것인지는 기약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뜩이나 동맹을 경시하는 트럼프의 재집권으로 한·미 관계의 앞날을 가늠하기 어려운 이 시기에 대사 공백 장기화는 우리 국익을 해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서 트럼프 임기 동안 주한 미국 대사를 지낸 해리스에게 한·미 동맹의 미래에 관한 조언을 청해 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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