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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전 교훈 얻은 유럽… 너도나도 첨단무기 개발 ‘잰걸음’ [심층기획]

입력 : 2024-11-14 06:00:00 수정 : 2024-11-14 16: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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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억제 강화 팔 걷어

우크라, 유럽 무기로 러 전략표적 폭격
장거리 미사일 성능 개선 중요성 커져
獨 ‘타우러스 네오’ 생산에 약 3조 쏟아
佛·伊·폴란드 등 순항미사일 공동 개발
사거리 최대 2000㎞ 목표… 러 위협 충분

美스텔스기 넘을 전투기 개발도 합종연횡
英·伊·日 손잡고, 佛·스페인 등 의기투합
佛, 차세대 핵항모 확보에 15조 투입도

유럽에 첨단 무기 개발 열풍이 불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대규모 전면전 양상이 전개되자 유럽에선 냉전 시절 핵심 무기였던 전차, 장갑차, 자주포, 박격포, 다연장로켓 등의 재래식 무기 수요가 폭증했다. 한국도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K2 전차와 K9 자주포, 천무 다연장로켓을 폴란드 등에 판매할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 넘게 이어지면서 유럽 국가들은 첨단 무기 확보에 눈길을 돌리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군이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전략 표적을 타격하는 전술로 성과를 거두면서다. 이 같은 원거리 정밀타격작전을 위해 유럽은 기존보다 더 우수하면서도 멀리 날아가는 미사일을 확보할 예정이다. 전쟁 전부터 진행됐던 6세대 스텔스 전투기 프로그램 등까지 더해지면, 2030년대 유럽의 전략적 억제력과 방위산업 기술 수준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독일 공군 유로파이터 전투기가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장착한 채 비행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장거리 미사일 개발 나선 유럽

 

유럽이 장거리 미사일에 주목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에 따른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지원받은 스톰 섀도·스칼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을 옛소련산 전투기에 탑재,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교량과 지휘소 등 러시아의 전략 표적을 정밀폭격했다. 우크라이나 공군이 러시아군 방공망을 돌파하기가 어려웠던 상황에서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에 의한 공습은 러시아군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

 

장거리 미사일이 전쟁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한 유럽은 신형 미사일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전쟁에 대비하면서 첨단 기술 개발을 통한 방위산업 진흥을 함께 노리는 모양새다.

 

독일 슈피겔과 영국 로이터 등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자국 군대가 보유하고 있는 타우러스(TAURUS)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의 성능을 높인 타우러스 네오(TAURUS NEO)를 개발해 600발을 생산할 방침이다. 총비용은 23억달러(약 3조1732억원)로 추정되며, 2029년부터 인도될 예정이다. 타우러스 네오가 개발되면 에어버스가 제작한 유로파이터 전투기에서 운용될 전망이다. 타우러스 미사일을 탑재하는 토네이도 전투기는 퇴역이 예정되어 있고, F-35A 스텔스 전투기에 장착하려면 기체를 대대적으로 개조해야 한다.

한국 공군도 운용 중인 타우러스는 독일·스웨덴이 공동개발한 미사일이다. 최대 500㎞ 떨어진 곳에 있는 지하시설이나 비행장 등을 파괴한다. 전투기에서 발사된 직후 낮은 고도로 비행해 적 방공망을 돌파한다. 매피스토(MEPHISTO)라고 알려진 2단 탄두를 탑재해 6m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도 관통한다. 표적 유도는 위성항법장치(GPS), 관성유도장치(INS), 지형대조항법(TERCOM) 방식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면서 최종 비행단계에선 적외선 카메라까지 사용해 정확도가 매우 높다.

 

독일은 타우러스 미사일의 사거리를 더 늘리고 정확도와 파괴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성능을 강화할 예정이다. 레이더에 포착될 확률을 낮추는 기술 등 방공망을 무력화하는 방안도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독일군이 보관하고 있는 타우러스 미사일 600발 중 절반이 실전에 쓰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타우러스 네오의 역할은 한층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둘러싼 유럽 내 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는 지난 7월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공동개발하는 의향서에 서명했다. 최근엔 영국과 스웨덴도 합류한 상태다. 유럽 장거리 타격 접근(ELSA)으로 불리는 프로그램은 사거리 1000~2000㎞의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독일 베를린에서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거리는 약 1600㎞, 폴란드 바르샤바에서는 약 1100㎞다. 유사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서부 주요 도시를 정밀타격할 잠재력을 서유럽이 갖게 되는 셈이다. 스톰 섀도와 스칼프, 타우러스 공대지미사일 사거리가 500㎞라는 점을 감안하면, 러시아를 겨냥한 전략적 억제능력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영국·프랑스가 개발한 스톰 섀도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이 2018년 7월 영국서 열린 판보로 에어쇼 현장에 전시되어 있다. 게티이미지

미국도 유럽에 미사일 전력을 증강할 모양새다. 사거리 500~5500㎞의 지상 발사 미사일은 1987년 미국과 옛소련이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 의해 2019년까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인 2019년 러시아가 지상 발사 순항미사일인 9M729를 개발, 배치해 INF를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INF 탈퇴를 선언했다.

 

법적 제약이 사라진 상태에서 벌어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미국의 미사일 전력이 유럽에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미국과 독일은 지난 7월 미군이 SM-6 함대공미사일(사거리 460㎞),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사거리 1500㎞), 개발 중인 극초음속 무기 등을 2026년부터 독일에 단계적으로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미 해군이 사용하는 함대공미사일인 SM-6는 초음속 성능을 갖추고 있어 미 육군도 지상 공격용으로 운용하고 있다. 높고 빠르게 날아가는 SM-6와 낮고 느리게 비행하면서 레이더를 회피하는 토마호크를 함께 발사하면, 적 방공망은 대응하기가 어려워진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미국과의 합의 직후 “러시아의 다양한 무기체계를 고려할 때 우리에게 정밀 미사일이 필요하다고 (올 2월) 뮌헨안보회의에서도 지적했다”며 “억지력의 요소이자 평화에 대한 기여”라고 말했다.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엔 “동맹국과 독일 영토를 보호할 억지력을 어떻게 확보할지 논의해왔다. 핵우산도 있지만 스스로를 보호할 정밀타격 옵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첨단 전투기 개발도 추진

 

미국 스텔스기를 넘어서는 첨단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도 유럽을 중심으로 계속 추진되고 있다. 미국이 F-22, F-35를 만들 때, 유럽은 미국의 행보를 따르지 않은 채 라팔과 유로파이터, 그리펜을 제작하면서 미국식 스텔스기 개발과는 거리를 뒀다. 이후 F-22, F-35보다 더 강력한 스텔스 성능과 네트워크 능력을 지닌 첨단 전투기를 만드는 ‘퀀텀 점프’(어떤 일이 계단을 뛰어오르듯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것) 방식의 전략을 세웠다.

 

현재 유럽에서 진행 중인 첨단 전투기 개발 사업은 영국, 이탈리아, 일본이 참여하는 글로벌 전투항공 프로그램(GCAP)과 프랑스, 스페인, 독일이 참가하고 벨기에가 옵서버 지위를 갖는 미래전투항공시스템(FCAS)이 있다.

 

2022년 공개된 GCAP는 글로벌 차원의 협력이 강조되는 프로그램이다. 영국·이탈리아가 추진하던 템페스트(Tempest) 전투기 개발계획과 일본의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을 합친 것으로 2035년까지 실전배치되어 유로파이터(영국·이탈리아)와 F-2(일본) 전투기를 대체할 예정이다. GCAP는 유로파이터 속도(시속 2495㎞)보다 두 배 더 빠르고, 1만배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한다. 인공지능(AI) 기술과 고도의 스텔스 성능, 유·무인복합체계도 포함될 예정이다.

 

3국이 GCAP를 추진하게 된 것은 정치·경제·기술적 리스크를 분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유럽연합(EU)을 탈퇴한 영국은 차세대 전투기 개발 파트너로 이탈리아와 일본을 선택, 국제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 중국의 스텔스 전투기 개발에 맞서 F-X 사업을 추진하던 일본은 첨단 기술 공유에 미국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GCAP에 참여했다.

프랑스·독일·스페인이 개발에 참여하는 미래전투항공시스템(FCAS) 시제기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영국과 이탈리아, 일본은 GCAP 추진을 더욱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3국 국방장관은 지난달 회담을 갖고 전투기 공동개발 사령탑 역할을 하는 국제기구(GIGO)를 연내 영국에 설치하는 한편 국제기구와 계약을 체결할 합작기업(JV)을 3국 항공업체를 중심으로 설치하기로 확인했다. 기존에는 GIGO가 3개국 업체에 발주하는 구조였는데, 합작기업 설립으로 계약 대상이 단일화하면서 개발계획이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게 됐다.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은 “개발 추진의 양 축인 국제기관과 합작기업이 가동하게 됐다. 내년 중 양측이 첫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주도로 이뤄지는 FCAS는 유럽 차원의 방위산업 협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차세대 전투기와 무인기, 위성 등을 통합 운용하는 시스템이 FCAS의 핵심은 전투기다. 강력한 스텔스 성능과 네트워크 능력을 토대로 전장환경 변화와 실시간으로 대응하며, 증강현실 기술로 조종사의 의사결정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핵추진항공모함을 운용하는 프랑스의 특성을 반영, 함재기로도 제작된다.

 

프랑스는 FCAS와 별도로 라팔 전투기의 성능을 높인 개량형 개발에도 착수했다. 개량형 라팔은 공중전투드론과 미래형 극초음속 핵미사일을 통제할 능력을 갖출 전망이다. FCAS 개발이 지연될 경우 프랑스 공군 전력공백을 메우는 역할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현재 운용 중인 핵항모 샤를 드골호보다 우수한 성능을 지닌 차세대 핵항모를 2030년대 후반쯤 확보할 예정이다. 총사업비가 100억유로(1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차세대 핵항모 건조가 지연된다면, 샤를 드골호의 수명 연장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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