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복장자율로 수선 감소 타격
“15년 전에 비해 일감 절반 안돼”
을지로 70대, 폐업 준비하며 한숨
“만원 들여 굽교체보다 새로 구매”
저가 패스트 패션 대중화 여파도
“요즘 회사원들은 예전만큼 정장을 갖춰 입지도 않고, 정장 양복 차림에도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어요. 하이힐을 신고 출퇴근하는 사람도 크게 줄었죠. 사람들의 패션이 달라지니까 장사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15년간 인근 직장인들의 구두를 고쳐온 황모(73)씨는 최근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 29일 오후 찾은 황씨의 6.6㎡(2평) 규모 구두수선대에는 손님 한명 없이 황씨가 틀어놓은 유튜브 영상 소리만 울려퍼지고 있었다. 10년 전만 해도 구두 광택이나 수선을 맡기려는 대기업 직원들의 발길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곳이다.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근처 등 길거리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던 구두수선대가 설자리를 잃고 사라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서울 시내 구두수선대는 768곳으로 집계됐다. 2011년 1266곳에 달하던 구두수선대가 13년 만에 약 40% 감소한 것이다. 2021년 936곳에서 2022년 866곳, 지난해 830곳으로 매년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기업들이 밀집해 직장인 수요가 몰리는 지역조차 이 같은 감소세가 뚜렷했다. 중구의 구두수선대는 2021년 106개에서 지난해 88개, 영등포구는 62개에서 50개, 강남구는 94개에서 81개로 각각 줄었다.
황씨는 “벌이가 좋았던 15년 전에 비하면 일감이 절반 수준도 못 미친다”며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하루에 구두를 족히 쉰 켤레는 닦았는데, 요즘은 열 켤레 수준”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과거 직장인들은 중요한 회의 전에는 반들반들 윤을 낸 구두를 신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엔 그런 구애를 받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황씨의 구두방을 찾은 직장인 박모(37·여)씨는 “기업문화가 비교적 보수적인 은행에 다니지만 매주 금요일은 ‘캐주얼 데이’로 정해져 있어 후드티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출근하고 평일에도 로퍼(끈 없는 캐주얼한 구두)나 슬립온(가죽이 아닌 끈 없는 신발)을 신는다”고 말했다. 황씨에게 명품 구두 수선을 의뢰한 박씨는 “주말 결혼식에 신고 가려고 맡겼다. 이런 날이 아니면 하이힐을 꺼낼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패스트 패션’(유행을 즉각 반영한 디자인에 싼 가격의 패션) 보편화를 구두수선 감소의 원인으로 꼽는 목소리도 있다. 중구 무교동 구두수선대를 운영하는 김모(70)씨는 “오늘 오전에만 해도 구두굽을 바꾸러 온 손님이 1만5000원이라는 교체 비용을 듣고는 ‘그 돈이면 새 신을 사겠다’며 돌아갔다”고 푸념했다. 김씨는 “비싼 신발을 사서 밑창이나 굽을 고쳐가며 아껴 신기보다 중국에서 만든 2만∼3만원짜리를 사서 한철 신고 버리기 좋아진 시대”라고 말했다.
구두수선대 영업을 포기하는 수선공 상당수는 ‘판매부진’을 이유로 꼽았다. 서울시가 2022년 발표한 구두수선대 영업포기 사유를 보면 판매부진, 운영자의 고령으로 인한 포기를 원인으로 지목한 응답이 각각 42%, 19%로 가장 많았다. 김씨는 “수선공 대부분이 고령이고, 이 일이 아니면 마땅히 할 일이 없어 벌이가 적어도 일을 그만두긴 쉽지 않다”며 “내 경우에는 수십년 전부터 함께해온 단골손님들 덕분에 입에 풀칠은 하지만, 손님도 수선공도 신규 유입은 없고 나이 든 사람만 버티고 있으니 10년 후엔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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