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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 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빗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지난밤에는 비가 왔다. 건물 안팎을 오가며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는 동안 외투가 제법 젖었다. 갑작스러운 한기를 느끼며, 이대로 남은 가을이 다 저물어버리겠구나,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 길었던 때문인지 이번 가을은 유독 귀하게 여겨진다.

 

깊은 밤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윤동주를 읽었다. 시가 건네는 고즈넉함, 그윽함. 이런 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가을 정취가 아니었을까.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켜자 비로소 가을이 능금처럼 익어 가고 있음을 알았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어쩌다 끼여 앉은 술자리에서는 얼마간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무례하거나 저속하거나 혹은 시답잖은 이야기들. 인간의 그렇고 그런 일들.

 

“하루의 울분”은 좀처럼 씻기지 않았으나, 밤새 분개하기에 이 가을은 너무 아까운 것이다. “마음속으로 흐르는” 시의 소리는 너무 아름다운 것이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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