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적 관점에서 인류 성향 분석
“회피하도록 진화했지만 효과 뚜렷”
운동 관련 미신 12가지 정보도 담겨
평생 건강하게 운동하는 해법 눈길
운동하는 사피엔스/대니얼 리버먼/ 왕수민 옮김/프시케의숲/ 2만6800원
미국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과 대니얼 리버먼 교수는 연구를 위해 멕시코 오지의 타라우마라 원주민을 찾았다. 타라우마라족은 상상 못 할 먼 거리를 밥 먹듯이 달린다고 외부에 소개돼왔다. 만나보니 소문과 달랐다. 이들은 웬만해서는 달리지 않았다. 소싯적 잘 달리기로 유명했던 70대 노인 에르네스토와 대화를 나눴다. 노인은 달리기만으로 사슴을 뒤쫓아 맨손으로 사냥했다는 무용담을 풀어놨다. 리버먼 교수는 미국인의 달리기 훈련법을 언급하며 그에게 평소 훈련을 물었다. 노인은 영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꼭 달려야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달릴 사람이 대체 어디 있단 말이오?”
운동에 대한 통념 중 하나로 ‘인간은 원래부터 운동하고 싶어한다’가 있다. 수렵채집인 조상들이 수백만년 동안 걷고 달리며 진화했으니, 우리는 운동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것. 그러나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인간은 운동을 회피해야 타당하다.
리버먼 교수가 2013년 탄자니아 하드자족을 찾아갔을 때 처음 든 생각도 ‘어떻게 다들 그렇게 하나같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였다. 하드자족은 지구에 손꼽히게 남은 수렵채집 부족이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하드자족 성인은 하루 중 가벼운 활동에 3시간40분, 중·고강도 활동에 2시간14분을 할애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북미의 원주민에 대한 연구를 종합하면 과거 인간의 통상적 업무 시간은 하루 7시간 정도였다. 이 중 격렬한 활동은 1시간밖에 안 됐다.
수백만년에 걸쳐 인류는 되도록 신체활동을 피하려는 본능을 키워왔다. 얻을 수 있는 칼로리는 제한적인데, 우리 몸은 뇌, 간, 근육에만 휴식기 신진대사의 거의 3분의 2를 쓴다. 인간은 유인원 사촌인 침팬지에 비하면 ‘기름을 많이 잡아먹는’ 생물체다. 인류는 에너지 수지가 유난히 낮았던 조상에서 출발했고, 생식 성공률을 높이는 데는 또 유난히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그러니 쓸데없는 신체활동을 꺼리는 성향을 지니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인 4명 중 3명은 비만을 의지 부족의 문제로 보지만, 사실 에너지 낭비를 피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고 운동하기 싫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셈이다.
리버먼 교수의 신간 ‘운동하는 사피엔스’는 이처럼 진화론과 인류학의 관점에서 신체활동을 들여다본다. ‘인류는 최대한 비활동적이 되도록 진화했는데 왜 역설적으로 운동이 건강에 좋을까’하는 물음부터 ‘지구력을 얻으려면 근력을 포기해야 할까, 장시간 앉아있으면 담배만큼 해로울까, 운동은 체중 감량에 아무 소용이 없을까’ 등 운동을 둘러싼 다양한 질문에 답을 모색한다.
오래 앉아있으면 에너지 소모가 적은 건 사실이다. 특히 등받이 의자가 문제다. 그저 서 있기만 해도 앉아있을 때보다 시간당 8칼로리를 더 태우고, 빨래 개기 같은 가벼운 활동은 시간당 100칼로리나 더 소모시킨다. 운동이 아닌 저강도 신체활동을 하루에 5시간만 해도 1시간 달릴 때와 맞먹는 에너지를 쓸 수 있다.
오래 앉아있기는 만성염증을 유발한다. 지방이 쌓이고 혈류에서 지방과 당을 흡수하는 속도를 떨어뜨리며 근육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만성염증은 동맥, 근육, 간, 뇌 등 신체를 끈질기고 은밀하게 손상시킨다.
중요한 건 앉아있는 총 시간 자체가 아니라 패턴이다. 실험 결과 장시간 앉아있는 사이 잠깐이라도 움직이도록 하니 혈액 속 당, 지방,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모두 낮아졌다. 과거에도 인류는 오래 앉아있었지만 등받이 의자에 무력하게 앉는 게 아니라 쪼그려 앉거나 바닥에 앉아 사부작사부작 일하고 수시로 일어났다. 저자는 “지금 앉아있는 데 죄책감이 든다면 여러분이 활동적으로 지내도록 진화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많이 앉아있도록 진화하기도 했다는 점을 마음에 새기자”며 “대신 한자리에서 너무 오랜 시간 꼼짝하지 않기보다는 활동적으로 앉을 방법들을 찾아보자”고 조언한다.
달리기의 경우 인간은 단거리를 빠르게 달리는 데는 취약하다. 우사인 볼트조차 최대 속도가 야생 염소, 회색곰, 하이에나, 기린에 한참 못 미친다. 신체 구조상 인간은 굼벵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땀 흘리기 챔피언’ 능력 덕분에 장거리 달리기로는 다른 동물과 겨뤄볼 수 있다.
지나치게 오래 달리면 마모 때문에 무릎과 엉덩이의 물렁뼈가 깎여 골관절염이 생길까. 저자는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십수건의 정밀 연구 결과, 오히려 달리기 등의 신체활동은 물렁뼈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 골관절염을 막아준다. 무릎 골관절염 발병 확률이 두 배 높아진 것은 옛날보다 ‘더’가 아니라 ‘덜’ 움직여서다.
리버먼 교수는 인간이 운동을 회피하도록 진화했지만 운동의 효과는 분명하다고 말한다. 운동하면서 몸은 손상을 입지만 이후 모든 손상을 보수할뿐더러 과거 운동하지 않을 때 생긴 일부 손상도 고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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