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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아파야 들어갈 수 있나요”…‘공사장 추락’ 70대도 진료거부로 사망 [뉴스 투데이]

입력 : 2024-09-05 06:00:00 수정 : 2024-09-05 09:3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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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의사 없어 골든타임 넘겨
진료 제한 운영에 환자들 분통

응급실 상주 의사 절반 줄어
‘응급실 뺑뺑이’ 2024 3500건
4차 이상 재이송 2023년의 2배

의정갈등 속 병원 지킨 의료진
사태 장기화에 ‘번아웃’ 잇따라

전국 주요 병원에 군의관 파견
“적응기간 필요” 즉각 투입 못해

“병원에 가서 수술했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텐데요.”

 

부산 공사 현장에서 추락한 뒤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끝내 목숨을 잃은 70대 노동자 동료의 탄식이다. 4일 부산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이달 2일 오전 8시11분 부산 기장군 축산시설 신축공사 현장에서 70대 노동자 A씨는 자재를 운반하던 중 2층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고 접수 10분 만에 현장에 출동한 119구급대는 해운대백병원 등 인근 응급의료센터들에 환자 수용 가능 여부를 물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이 파행하는 가운데 4일 서울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 인근에서 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119구급대는 결국 신고 접수 40여분 만에 사고 현장에서 50㎞ 떨어진 부산 서구 고신대병원 응급실로 A씨를 이송했다. 병원 진료 결과 등뼈 골절 등으로 폐손상이 우려돼 긴급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병원에는 수술을 할 전문의가 없었다. 병원 측이 전원할 병원을 알아보는 와중인 낮 12시30분쯤 A씨는 사망했다. 당시 구급차에 동승했던 동료 B씨는 지역매체에 “구급대원들이 돌아가며 주변 병원들에 전화를 했지만 모두 진료를 거부했다”며 “말로만 들었지만 응급실을 찾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고 탄식했다.

 

전공의 이탈과 대학병원 전문의들 사직 여파로 전국 병원의 응급실 위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4일 응급실 ‘셧다운’이 우려되는 전국 주요 병원에 군의관들을 파견했으나 곧바로 진료에 투입되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적응기간이 필요해서다. 정부는 응급실의 환자 미수용 원인이 의사 부족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해 “전공의들이 이탈하면서 주로 대학병원 위주로 진료 역량이 30%가량 줄었다”며 “군의관과 공보의 250명을 파견할 텐데, 이들이 도움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파견될 군의관·공보의 중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8명가량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응급실 파행을 막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야간·공휴일 진료 제한 3일 오후 충북 충주시 건국대충주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의료진에 응급환자를 인계한 119구급대원들이 응급실을 나서고 있다. 충주=윤교근 기자

아울러 응급실 배후진료 역할을 하는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신경과·신경외과·심장혈관흉부외과 의료진 인력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응급실의 환자 거부 사례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응급의학 전문의는 “그동안 응급실에는 전문의와 전공의까지 3∼4명씩 돌아갔는데 전공의가 빠지고 1명이 모든 역할을 담당하면서 여러 환자가 동시에 올 때 속수무책이 됐다”며 “응급실 의료진 1∼2명만 사직해도 ‘연쇄 사직’으로 연결되는 것이 이런 부담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산뿐 아니라 수도권 등 전국 응급실이 준마비 상태다. 3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아주대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경기소방재난본부 소속 응급구조사 김모씨는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제한구역’ 표시가 된 응급실 입구 너머로 환자를 의료진에게 넘긴 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동네 병의원이 아직 문을 연 시간이라 평소 같으면 다소 한가할 때이지만 의료 대란 이후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요즘은 야간보다 주간에 더 긴장되고 신고도 폭주한다”며 “오후 1∼3시에 환자가 몰려 수용 가능한 병원을 찾느라 폭염을 뚫고 돌아다니는 게 일상”이라고 전했다. 이곳에서 마주한 또 다른 응급구조사는 “예전 2차 병원에서도 받아주던 환자라도 지금은 응급실 찾기가 힘들어 큰 병원부터 찾아다니고 있다”고 호소했다.

 

응급실 전문의가 줄어들자 아주대병원은 중증환자를 우선으로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다. 내부 구성원 논의를 거쳐 응급실 문을 닫지 않는 대신 매주 목요일 축소 진료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달 5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7시부터 이튿날 오전 7시까지는 16세 이상 성인 환자의 경우 심폐소생술(CPR)을 필요로 하는 등의 초중증환자만 받는다. 병원 관계자는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줄이면서 지역의료 최후 보루 역할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앞선 2일부터 야간 응급실 제한 운영을 결정한 강원대병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강원대병원 응급실에는 전문의 5명이 근무하고 있었으나 2명이 휴직하면서 정상 운영이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는 응급실에서 성인 진료를 무기한 중단하기로 했다. 개원 이래 처음이다.

 

충북 건국대충주병원도 이달부터 응급실 진료 제한에 들어갔다. 평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다. 주말에도 문을 닫는다. 지난달까지 응급의학과 전문의 7명이 있었으나 5명이 사직하면서다. 충주지역 한 전문의는 “뇌출혈 등 중증 응급환자는 신경외과나 외과 전문의가 받쳐주지 않으면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며 “위급상황이면 응급처리를 해서 1~2시간 정도 버틸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50대 간병인 김모씨는 “개인 병원 등에는 응급실이 없고 충주에는 중증 응급환자를 진료할 곳도 마땅치 않다. 만성적인 중증질환을 가진 사람도 불안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정 갈등 장기화로 악화하는 사정은 이들 병원뿐이 아니다. 세종충남대병원 등은 야간과 주말 등에 응급실을 단축 운영하고 있고, 이대목동병원도 매주 수요일 야간진료를 제한 운영 중이다. 순천향천안병원의 경우 권역응급의료센터는 24시간 운영하지만, 소아응급의료센터는 주 3회 주간만 진료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용인세브란스병원 등은 서울 강남과 강북, 경기 북부는 물론 충청권에서 몰려드는 응급환자들로 애를 먹기도 한다. 이른바 치료받을 곳을 찾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태가 불러온 풍경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미 응급실 상주 의사가 절반 이상 줄어든 상황에서 추석 연휴 응급환자가 몰리면 각 병원들이 체감하는 응급환자는 기존의 4배 이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전문의는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들이 몇 시간씩 대기하는 게 기본이 됐다”며 “환자나 의료 인력 모두 체력적, 정신적 피로도가 한계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의료진 이탈로 일부 병원의 응급실 운영이 제한되면서 환자를 태운 119구급대가 다른 병원을 찾아 나서는 사례가 올해만 3500건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양부남 의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1일부터 8월20일까지 119 구급대로 환자가 이송됐으나 병원의 거부로 다른 병원으로 옮겨진 사례(재이송)는 3597건으로 집계됐다. ‘전문의 부재’가 1433건으로 전체의 39.8%를, ‘병상 부족’ 509건(14.2%), ‘1차 응급처치를 했기 때문’ 493건(13.7%) 등이 뒤를 이었다. 병원이 없어 4차 이상 재이송된 사례는 지난 한 해 전체 발생건수(16건)를 훌쩍 넘은 23건 발생했다.


부산·수원·충주·춘천=오성택·오상도·윤교근·배상철 기자, 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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