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자 7356명 중 85%가 1년 계약직
1인당 어르신 131∼300명 관리 담당
과도한 업무·최저임금 수준 급여에…
“어르신 관리하는 인력업체 사장 같아”
계약직 7명 중 1명꼴로 6개월 내 퇴사
결국 노인일자리 사업 질적 저하 초래
“사업 핵심 주춧돌… 정규직 전환해야”
“어르신이 쓰러졌어요. 얼른 와보셔야겠어요.”
박시은(32·가명)씨는 전화를 받고 급히 학교로 향했다. 급식지원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A 어르신이 쓰러졌다는 소식이었다. 병원에서 “아침 식사를 안 하셔서 당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진단을 들은 뒤에야, 박씨는 잠시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이내 ‘나 때문에 어르신이 다친 것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박씨를 괴롭혔다. 복지관의 노인일자리 담당자인 그는 A 어르신을 선발해 학교에 배치한 담당자였다.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달라던 학교 측 요구를 거절한 것도 그였다. 학교에서는 젊고 일을 잘하는 어르신을 원했는데, A 어르신은 80대 고령인 데다 인지 능력도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노인일자리가 내 삶의 낙”이라고 말해온 그에게 박씨는 차마 “일을 그만하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가 어르신의 활동을 중단시키지 않은 데는 다른 어르신을 투입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매일 어르신 150명의 출결 관리, 민원 상담, 활동점검, 급여관리와 그 모든 서류 작업 등을 하기도 벅찬 상태였다. 새로 모집 공고를 내고 선발해 교육하기 부담스럽다는 생각에 어르신 건강 문제를 애써 외면했던 것만 같아 그는 괴로웠다.
박씨는 이 사고를 계기로 노인일자리 담당자 업무를 그만뒀다. 박씨는 “남을 돕는 일에 흥미를 느껴 사회복지사가 됐지만, 업무량에 지쳐 어르신을 뒷전에 두는 모습에 회의감이 들었다”고 퇴사 이유를 밝혔다.
그는 노인일자리 담당자를 ‘어르신 150명을 관리하는 인력업체 사장’에 비유했다.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어르신과 관련된 모든 업무를 그가 도맡기 때문이다. 그 대가로 받는 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는 “사회복지사의 열정과 인내심을 열정페이로 퉁치는 것”이라며 “과도한 업무량과 열악한 처우를 버티지 못한 담당자들이 자주 교체되면서 결국 일자리 참여 어르신만 불편을 겪게 된다”고 우려했다.
◆6개월간 계약직 14% 퇴사
노인일자리 담당자들이 과로와 저임금을 호소하며 현장을 떠나고 있다. 지난 6개월간 박씨처럼 퇴사한 노인일자리 담당자만 900명이 넘는다. 계약직 담당자의 경우 7명 중 1명꼴로 퇴사했다.
2020년부터 현재까지 노인일자리 담당자로 근무했거나 근무 중인 담당자 8명은 “열악한 처우 탓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노인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데만 골몰한 가운데, 사업을 수행하는 담당자 처우 문제는 도외시한다는 지적이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노인인력개발원(개발원)이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노인일자리 담당자는 7356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정규직(무기계약직 포함)은 14.6%(1072명)에 불과하고, 85.4%(6284명)는 1년 단위 계약직이다.
올해 6월까지 중도 퇴사한 노인일자리 담당자는 969명이다. 정규직은 76명이고, 계약직이 894명으로 대다수였다. 계약직 담당자의 14.2%가 1년의 계약 기간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한 것이다. 정규직(7.1%)의 두 배 수준이다.
담당자가 중도 퇴사하면 그가 소속된 수행기관(복지관 등)은 대체인력을 찾아 ‘긴급 모집’ 공고를 낸다. 정부가 운영하는 채용정보 사이트 ‘워크넷’에는 이날 기준 노인일자리 담당자를 모집하는 공고가 33건 게시돼 있다. 모두 계약직이다.
대체 인력이 모집될 때까지 수행기관에 남아있는 담당자의 업무는 배가된다. 6월 기준 노인일자리 담당자 1명이 감당하는 노인일자리 참여자는 평균 131명이다.
여기에 퇴사자가 담당했던 참여자까지 떠맡을 경우, 관리해야 하는 숫자는 300명까지 늘어난다. 김모(45)씨는 담당자 한 명이 퇴사하면서 3개월간 296명을 혼자 담당한 적이 있다. 당시 입사 6개월차로 업무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도움을 구할 곳은 없었다. 노인일자리 업무는 오롯이 ‘담당자’가 도맡는다. 김씨는 “노인일자리 업무는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며 “갑자기 한 명이 퇴사를 해버리니 너무 막막했고 정신없이 일해야 했다”고 토로했다.
막중한 업무 강도 속 주어지는 낮은 급여는 퇴사를 부추긴다. 올해 노인일자리 담당자의 급여는 월 206만1000원으로, 최저임금(206만740원)보다 260원 많다. 또 다른 담당자인 김민희(25)씨는 “업무량이 많고 관리해야 할 참여자가 많아도, 그에 걸맞은 보상이 있었다면 퇴사에 대해 이토록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계약직 담당자는 호봉이 인정되지 않는 탓에 1년 차와 5년 차의 급여가 동일하고,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도 월급은 변동이 거의 없다. 김씨는 “이 일에서 장기적인 비전이 보이지 않고, 매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결국 이날 퇴사했다.
◆“정규직화해 처우 개선해야”
담당자의 잦은 퇴사는 노인일자리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담당자는 떠난 동료의 관리 몫까지 떠안아야 하고, 새로운 업무 담당자가 와도 적응까지 시간이 걸린다. 새 담당자가 먼저 떠날지도 모른다.
정부도 노인일자리 관리 개선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다. 복지부는 이미 노인일자리 1차 종합계획(2013∼2017년)에서 “낮은 보수와 과중한 업무량 등으로 매년 담당자가 교체되고 있어 현장의 경험과 노하우가 전수되지 못해 사업의 연속성이 저해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그러나 지적만 했을 뿐, 4년 뒤에도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복지부는 2차 종합계획(2018∼2022년)에서 “전담인력(담당자) 처우개선 등 인프라 질 제고 노력은 미흡했다”고 자평했다. 이후 계약직 담당자의 계약 기간이 11개월에서 12개월로 늘고 담당자 일부(13%)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지만, 여전히 열악한 근로환경이다.
개발원은 ‘3차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종합계획 수립 연구보고서’에서 “노인일자리 사업량이 비대해지면서 일선 현장에서 노인일자리를 담당하는 인력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지만, 전담인력의 고용은 불안정하고, 처우는 열악하며, 이런 인력의 근무환경이 사업의 질적 저하를 초래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배재윤 개발원 부연구위원은 노인일자리 담당자를 “사업 추진의 핵심 주춧돌”이라고 표현하며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복지부의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적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인일자리 담당자는 많은 업무를 감당하는데도 호봉 상승의 제한, 급여, 복리후생이 일반 사회복지사보다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복지부는 다른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와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문제라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가가 노인일자리 담당자에게만 더 나은 대우를 할 수는 없다”며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처우개선이 이뤄져야 하는데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다 보니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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