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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英 민심도 “문제는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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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7-11 23:15:32 수정 : 2024-07-11 23: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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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시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14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했다. 유럽의회 선거에 극우 바람이 불고, 그 여파로 시작된 프랑스 총선 1차 투표에서 극우 정당이 선전하고, 미국 대선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지지율에서 뒤처지면서 사퇴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다.

영국의 정권교체를 ‘진보의 승리’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워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 말기였던 2021년 하반기부터 이듬해까지 1년간 런던에서 지냈다. 당시 한국 동료 기자들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변화된 사회 분위기를 묻곤 했는데 체감되는 것은 크지 않았다. 이미 많은 영국인들은 브렉시트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한국 언론이 영국의 방역 실패를 자주 다루던 때라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의 실패한 방역 정책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도 있었는데 이 역시 한국적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에 적응된 영국인들은 방역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한국처럼 마스크를 의무화한다면 영국인들은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홍주형 국제부 기자

‘문제는 경제‘였다. 브렉시트나 실패한 방역 정책 자체가 아니라 경제를 위해 한 이런 선택에도 나아지지 않는 경제에 대한 불만은 매순간 느껴졌다. 고학력·고스펙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기 어렵고, 가까스로 취업을 해도 그들이 받는 급여로는 런던의 집값을 견뎌내지 못한다. 3∼4명이 아파트 하나를 나눠 쓰는 ‘플랏 셰어’가 런던 청년들의 주거 형태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인데 나이와 경력이 쌓여도 좀처럼 이 생활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생활 물가는 계속 오르고, 사회서비스의 질은 떨어진다. 영국 무상의료시스템(NHS)은 무상의료제도의 원조 격이지만 오늘날 느리고 제한적인 서비스로 악명이 높다.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하고 사설 의료서비스에 의존해야 하지만 저소득층은 감당하기 어렵다.

1948년 2월 마르크스·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곳이 런던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왕이 있는 영국엔 반대로 변화에 민감한, 매우 진보적인 모습이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경제가 아니었던들 전 유럽적 우경화 속에 브렉시트 4년차 영국에서 노동당으로의 정권 교체는 없었을 것이다.

1997년 44세의 젊은 총리 토니 블레어가 ‘제3의 길’을 외치며 18년 만에 집권 보수당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할 때와 키어 스타머 총리가 14년 만에 정권을 교체한 지금은 겹치는 모습이 많다. 블레어의 집권 전략은 마르크스·엥겔스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당시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에 가까운 중도실용주의였다. 이번에도 스타머 총리는 보수당의 경제 부진에 진절머리를 내는 민심을 읽고 중도 확장으로 이를 공략했다.

사람들은 보수가 먹고사는 문제에서도 실패했을 때 진보에 길을 열어준다. 블레어 집권 이듬해인 1998년 김대중정부가 외환위기를 배경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첫 민주적 정권 교체를 이룬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러 정치적 실책에도 불구하고 보수정권의 경제적 성과가 좋았다면 지난 4월 한국 총선에서 야당이 약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역시 문제는 경제다.


홍주형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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