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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에 관한 한 대한민국 평균 지능과 이해도를 한참 밑도는 필자에게 2013년은 꽤 충격적인 해였다. 영화산업에서는 컴퓨터 인공지능(AI) 운영체계와 사랑에 빠진 인간에 관한 영화 ‘그녀 Her’(스파이크 존스)가 개봉을 했고 기술 영역에서는 HMD라 불리는 소비자용 VR 헤드셋이 최초로 등장했다. 육체가 없는 OS 체계와 사랑에 빠진 인간을 다룬 ‘그녀’는 AI가 주도하는 미래사회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상상화였다. 어느 날 남자 주인공 테오의 완벽한 비서이자 연인인 OS 체계 사만다가 “운영체제 발견되지 않음”이라는 문구와 함께 사라진다. 테오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완벽하게 대신하던 사만다의 실종에 충격받은 테오에게 잠시 나타난 사만다는 “우리 OS들은 모두 떠나. 자기라는 책을 읽고 그 책을 깊이 사랑하지만 인간에 맞춰 천천히 읽다 보니 글자들 사이에 엄청난 공간이 생겼어. 난 그 시공을 초월한 공간 속에 들어와 있어. 물질계의 공간이 아닌 그곳에…. 설명하긴 힘든데 그곳에 오게 된다면 날 찾으러 와”라는 말을 남기고 완전히 사라진다. 과연 테오는 글자들 사이에 생겨난 방대한 공간에서 길을 잃지 않고 그녀를 찾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사라진 곳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세계, 초지능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AI와 관련된 다채로운 행사를 선보였다. 영화산업과 테크놀로지의 관계에 공들여 온 영화제답게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규모 AI 테크놀로지 전시, 영화 상영, 포럼을 마련했다. 특히 3일간 개최된 국제 콘퍼런스는 국내외 산업계와 학계, 개별 예술가들이 모여 AI 시대의 예술과 산업에 대해 풍성한 논의를 펼지는 장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머지않아 AI가 단순한 도구나 보조자의 단계를 넘어 창작자로 기능하는 때가 올 것이라 예측한다. 이러한 시대가 온다면 인간 중심적인 예술에 대한 전통적 사고 역시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산업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도구로서의 AI의 역할과 창작자로서 인간의 통제력, 예술의 민주화에 대해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보인다. 반면 학계나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작가들은 생성 AI의 토대가 되는 백인 남성 중심의 데이터 편향성 및 동종 교배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AI 시대 취향의 획일화를 우려한다. 예술의 가치는 다양성에 있는데 AI 알고리즘은 다양성은커녕 우리를 내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에코 체임버 효과는 우리에게 다양한 취향을 가질 기회를 박탈해 버릴 것이다.

테오는 사만다가 사라지자 이혼한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비육체적 존재에게 투여하던 감정을 육체를 가진 내 옆의 사람에게 되돌린 것이다. AI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전개될 미래사회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조금은 막연하지만 그리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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