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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자’가 당연한 시대라지만
과학의 언어인 수학 포기하고
21세기 도태되지 않을 수 있나
어렵지만 포기 말자, 꿀벌처럼…

“너 인생 포기했니?”라고 누가 내게 말한다면 난 스스로 부끄러워하기 전에 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길 것이다. 설사 인생을 실제로 포기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니까. 하지만 “아빠, 살 빼는 것 포기했어?”라는 지청구를 듣는다면 어떨까? 나는 부끄러웠다. 그래서 결코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렇다. 포기는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닌 포기가 있다. “나는 수포자야”라고 전혀 부끄러움 없이 말하는 사람이 많다. 수학 정도는 포기해도 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멋진 태도라고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교육과정에서도 수학은 일종의 골칫거리가 되어 버렸다. 벡터와 행렬은 물론이고 미분과 적분 그리고 기하는 학교 교육에서 사라져야 마땅한 요소가 되어 버렸다. 수학 때문에 아이들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말이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수학에서 어려운 요소가 빠졌으니 이제 아이들은 수학 시간이 즐겁고 행복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여전히 수학은 재미없고 어려운 과목으로 남아 있다. 차라리 어려운 걸 배운다면 어려워서 자신이 못하는 게 납득이 되는데, 어려운 걸 다 빼도 여전히 어려우니 더 자괴감이 들 뿐이다.

어려워도 배우는 게 학습이고 힘들어도 가르치는 게 교육 아닌가? 심지어 사람은 꿀벌에게도 산수를 가르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모내시 대학의 생리학자 에이드리언 다이어 교수 연구팀은 꿀벌이 덧셈과 뺄셈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팀은 꿀벌에게 파란색은 “1을 더하라” 노란색은 “1을 빼라”는 신호로 인식하도록 훈련시켰다.

Y 형태의 통로를 만든다. 일자 형태 입구에서 파란색 도형을 보여준 후 그다음에 갈라진 두 개의 경로에 다시 파란색 도형을 놔두는데 이때 덧셈을 하게 한다. 예를 들어서 처음에 파란색 도형 2개를 봤다면, 그다음에는 파란색 도형 3개로 가야 한다. 답을 맞히면 설탕물을 주고, 틀린 경우에는 쓴 물을 준다.

같은 방식으로 입구에 노란색 도형을 두었다면 이번에는 뺄셈을 해야 한다. 입구에 노란색 도형 4개가 있다면, 노란색 도형 3개를 찾아가야 하는 거다. 몇 번의 학습 후 꿀벌의 정답률이 상당히 높아지자 실험에 대한 반론이 생겼다. 꿀벌이 덧셈과 뺄셈을 하는 게 아니라 파란색일 때는 더 많은 쪽으로 노란색일 때는 더 적은 쪽으로 가도록 학습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험을 변형했다. 파란색 도형 1개를 보여준 후 파란색 도형 3개와 2개 중 고르게 했다. 또 노란색 도형 4개를 보여준 후 노란색 도형 3개와 1개를 고르게 했다. 이때도 1개씩 차이가 나는 곳에만 설탕물을 두고 답이 아닌 곳에는 쓴 물을 두었다. 총 14마리의 꿀벌에게 각각 100번씩 훈련을 반복하자 대략 70%의 확률로 정답을 찾았다.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두고 “인간 외의 생물들도 숫자에 대한 인지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자평했다. 왜 꿀벌이 평소에는 전혀 필요 없던 산수 훈련에 적응해야 했을까? 간단하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산수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다.

수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현대는 과학의 시대이고 과학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수학은 비자연어다. 외국어보다도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못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꿀벌이 보여주었다. 꿀벌의 뇌는 0.0001g 정도인데 반해 사람의 뇌는 무려 1400g으로 꿀벌보다 1400만배나 무겁다. 꿀벌도 하는 걸 우리가 왜 못하겠는가?

지난주 완주군립도서관에서 열린 ‘살아 보니, 지능’이라는 제목의 토크쇼에서 한 도서평론가가 자신은 수포자로 살았다고 고백했다. 그 고백을 들은 청소년들이 “음, 수학을 못해도 저렇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군”이라고 생각할 틈도 안 주고 그는 청소년들에게 호소했다. “수학을 못해도 상관없다. 다만 포기는 하지 마라.”

그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여야 한다. 수학은 어쩌면 21세기 만국 공통 언어일지도 모른다. 아니, 곤충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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