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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익중은 뉴욕에서 모국어(한글)를 그리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다. 그는 1984년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로 유학을 갔다. 그곳에서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벌어야 하는 몹시 가난한 학생이었다. 방값을 아끼기 위해 그는 도심에서 먼 곳에 숙소를 잡고, 학교까지 버스로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그 버스 안에서 그림을 시작했다. 아주 작은 사이즈(3×3), 3인치 캔버스에 고국을, 고향의 그리운 사람들과 혼을, 모국어의 희로애락과 목소리들을 그렸다. 그러곤 그 3인치 캔버스를 천 개, 만 개 모아 아주 큰 대형 캔버스로 만들었다. 그 손바닥만 한 그림들이 대형 캔버스로 옮겨질 때마다 고국산천이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사람들이 되고 달항아리가 되고 아직 쓰이지 않은 시(詩)가 되어 세계가 알아주는 3인치 화가, 지금의 강익중을 세계 미술계에 우뚝 서게 했다.

3인치 그림들이 모인 그의 대형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말로만 듣던 ‘티끌 모아 태산’이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 듯 나도 모르게 신선한 감탄이 흘러나왔다. 백남준이 왜 그와 함께 휘트니 미술관에서 2인전을 열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청주 가는 길: 강익중’ 40주년 회고전을 7월4일∼9월29일 연다고 하니 7월 어느 날, 나도 청주로 내려가 꼭 그의 전시를 볼 생각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건 한결같이, 변함없이 3인치 그림을 그리며 그 그림들을 무한대로 확장해 나가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영역을 세계 어린이들의 꿈으로 확장해 1999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나라 어린이들이 그린 3인치 그림들을 모아 세계 여러 곳의 병원과 학교 도서관, 우리나라 몇몇 초등학교에도 설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를 사랑하고 어린이들의 미래를 꿈꾸며 함께 ‘꿈의 다리’를 건너는 작가. 어떻게 그런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 전시가 끝나면 이제 그의 고향인 청주는 강익중 때문에 세계적 문화도시, 지구촌의 플랫폼이 될지도 모른다. 그는 오는 10월24일∼11월16일 한국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 앞에 대형 한글 신전 4개를 설치해 모두에게 보여줄 것이다. 상상만 해도 놀랍고 자랑스럽고 아름답지 않은가.

나는 늘 나무를 사랑하듯이 훌륭한 작가들을 사랑해왔다. 그들이 천 년 전 사람이든 백 년 전 사람이든 생존하는 사람이든 관계없이 평생을 변함없이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그 사랑은 지금도 적당히가 아니라 충분히 나 자신을, 타인을 사랑할 힘을 주고, 내 길을 묵묵히 나아가게 해준다. 강익중도 내겐 그런 작가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곧 진정한 자기 자신인 사람.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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