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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애국시인과 유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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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7-07 23:44:26 수정 : 2024-07-07 23:4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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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조선의 독립을 외친 윤동주
中에 집터 남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중국 조선족 시인이 될 수 없어
중국식 애국프레임에서 놓아주길

최근 백두산에 다녀왔다. 연길공항을 통해 들어가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 시내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백두산 서파(위)와 북파(아래)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의 모습.  이우중 특파원

가장 먼저 와닿은 것은 상점 간판들의 배치 변경이었다. 기존에는 한글 위주에 한문을 병기한 간판이 주로 쓰였지만 2022년 ‘조선 언어문자 공작 조례 실시세칙’이 공포·시행되면서 국가 기관·기업·사회단체·자영업자들이 문자를 표기할 때 중국어를 우선적으로 표기하도록 명시했고, 세칙에 부합하지 않는 현판과 광고 등 표지판은 교체하도록 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한글이 왼쪽, 한문이 오른쪽에 쓰이거나 한글이 위, 한문이 아래에 들어간 간판들이 글자 위치를 바꿔 달았고, 바꿔 단 글자 뒤편에 자국이 남아 이전의 흔적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 간판은 지침에 맞춰 아예 새것으로 교체한 것으로 보였다.

 

연길 시내 식당과 상점, 호텔 모습. 2022년 시행된 ‘조선 언어문자 공작 조례 실시세칙’에 따라 간판의 한글과 한문 위치를 바꾸느라 생긴 자국이 남아 있다. 이우중 특파원

이어 방문한 용정시의 윤동주 생가에도 세칙 적용이 완료된 상황이었다. 생가 앞 안내석을 비롯해 생가 뜰의 ‘서시’ 시비 등의 한글 원문과 한문 번역본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윤동주가 한문으로 시를 썼다고 착각할 수 있겠다 싶었다.

 

용정시 윤동주 생가 앞 안내석에 ‘중국조선족유명시인’이라고 표기돼 있다. 이는 애초 ‘중국조선족애국시인’이었던 문구를 한글과 한문 좌우 배치를 바꾸면서 수정한 것이다. 이우중 특파원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생가 앞 안내석의 변화였다. 단순히 좌우 배치를 바꾼 데서 그치지 않고 기존에는 ‘중국조선족애국시인’으로 표기된 것이 ‘중국조선족유명시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애국(愛國)시인과 유명(著名·저명)시인의 차이는 어디서 나온 것일지 곱씹어보다 중국 당국 역시 윤동주를 조선족으로 규정하는 데 혼란이 온 것이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윤동주는 조선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시를 썼고, 시로써 저항했다. 이는 2010년 공개된 일본의 판결문에 본적이 함경도라고 돼 있고, 당시 재판 기록에 명시된 혐의가 조선 민족의 독립, 내선일체 부정 등인 데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특히 시인 스스로가 디아스포라적 정서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조선인으로 규정했다는 것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표현된다.

 

윤동주의 대표작 ‘별 헤는 밤’에는 그가 “멀리 북간도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며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을 불러보다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을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어디까지나 중국이 ‘이국’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윤동주 생가에는 그가 썼던 많은 시들이 중국어로 번역돼 원본보다도 앞서 돌과 기둥 등에 새겨져 있었지만 ‘별 헤는 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무엇보다 애국이든 유명이든 윤동주를 ‘중국 조선족 시인’으로 표현하는 것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매진하는 중국 당국의 논리 전개에도 무리가 따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길공항에 내렸을 때 본 커다란 전광판에는 ‘사회주의현대화강국 전면 건설에는 어느 민족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 민족은 중화민족대가정에서 석류알처럼 굳게 뭉칩시다’ 등의 표어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윤동주를 조선족 시인으로 칭하는 것은 자가당착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안내석의 단어도 수정된 게 아닌지. 다만 이렇게 찔끔 수정하기보다 이제는 윤동주를 ‘조선족 시인’이라는 프레임에서 놓아줘야 할 때가 아닐까.

 

이런 주장까지 보태면 양쪽으로부터 비난받을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최근 중국이 백두산을 ‘창바이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해 달라고 신청한 것을 두고 ‘백두산의 중국화’라든가 “중국이 백두산을 빼앗으려 한다”는 등의 우려가 나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물론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역사 왜곡까지 이어지는 것은 경계하고 대응책을 강구해야겠지만 분쟁 지역도 아닌 엄연한 자국 영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어떻게 막거나 비난한단 말인가. 백두산은 4분의 3이 중국 땅인 만큼 나머지 4분의 1을 가진 북한과 소통해 북·중 공동 등재를 시도하는 방안 정도가 현실적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백두산 중 4분의 3이 중국 땅이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윤동주가 조선 독립을 꿈꾼 ‘애국 시인’이라는 것도 사실의 영역이다. 언젠가 다시 용정시를 찾을 때는 바뀐 안내석 문구를 볼 수 있길 바란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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