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내가 다 빠져나간 뒤에도
끝끝내 남아 있는 내가 있다면
가지라고 불러볼까
볶아먹고 튀겨먹는 그 가지 말이야
물컹한
보랏빛
도마를 서서히 물들이는
가지를 보면 파랗게 질린 입술이 떠오르곤 했다
물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쭈글쭈글해진 손과 발이
가지야, 하고 부르면
멀리서 계단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물가에 산다는 건 나조차도 출입할 수 없는 지하실을 갖게 되는 일이다
(하략)
물속에 오래 있다 나오면 입술은 파랗고 손과 발은 쭈글쭈글하다. 마치 익힌 가지처럼 보일지도. 그러고 보니 익힌 가지의 모양은 펑펑 울고 난 뒤의 사람을 연상하게도 한다. 울음이 다 빠져나간 몸이며 얼굴을 체념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 자신을 가지에 빗댄 시 속 ‘나’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비워낸 건 속 가득 출렁이던 울음 같은 게 아니었을까.
“물가”에 사는 건 자신조차 출입할 수 없는 “지하실”을 갖게 되는 일이라는데, 그 지하실은 아마도 사시사철 침수를 면치 못하는 곳일 것 같다. 대책 없이 잠기는 곳. 눅눅한 불안과 절망이 유령처럼 웅크린 곳. 무엇이 그런 지하실을 만들었는지, ‘나’를 물가에 살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우는 일 외에. 제 속의 물기를 최선으로 짜내는 일.
그렇게 다 울고 난 뒤에도 끝끝내 남아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나’라면.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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