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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암살 배후에 CIA” 주장한 시릴 웨트 박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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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15 13:30:38 수정 : 2024-05-15 13: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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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가까이 케네디 암살 진상 파헤쳐
“오스왈드는 CIA의 첩자일 뿐” 단언

1963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의 진상을 60년 가까이 파헤친 것으로 유명한 의사 겸 변호사 시릴 웨트 박사가 93세 나이로 별세했다. 고인은 암살 배후에 미 중앙정보국(CIA)이 있다는 주장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케네디 암살의 진상을 둘러싼 의혹은 그의 사후 6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

 

1963년 케네디 암살 후 60년 가까이 그 진상을 파헤친 의사 겸 변호사 시릴 웨트(1931∼2024) 박사. 사진은 1975년 당시의 모습. AP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웨트 박사의 사망은 펜실베이니아주(州) 법원 당국에 의해 발표됐다. 법원 당국은 고인이 13일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만 밝혔다. 구체적인 사인이나 사망 장소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고인은 1931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유대인 이민자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피츠버그 대학교에 진학해 의학과 법학 두 분야에서 모두 학위를 땄다. 졸업 후에는 펜실베이니아주 엘러게니 카운티에서 오랫동안 검시관으로 일했다. 고인의 전공 분야는 병리학이지만 법의학자로 널리 알려진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1963년 11월 케네디가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선거 유세 도중 총격을 받고 숨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리 하비 오스왈드라는 이름의 24세 청년이 현장에서 붙잡혔다. 그런데 오스왈드는 범행을 전면 부인하며 “나는 희생양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오스왈드는 체포 직후 재판을 받기 위해 이동하던 중 잭 루비(당시 52세)라는 남성이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미 행정부는 케네디 암살 및 오스왈드 사망 등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얼 워런 당시 연방대법원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위원회를 꾸렸다. 워런 위원회는 이듬해인 1964년까지 조사를 벌인 뒤 “평소 미국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오스왈드가 단독으로 케네디를 암살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해산했다.

 

1963년 11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자동차 뒷좌석 왼쪽)과 부인 재클린 여사(〃 오른쪽)가 텍사스주 댈러스 시내에서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케네디는 이 사진이 촬영되고 1분여 뒤 암살범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AP연합뉴스

검시관으로 일하던 웨트 박사는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열성적인 민주당 지지자로 민주당 소속인 케네디에도 호감을 갖고 있었다. 워런 보고서를 꼼꼼히 읽은 고인은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란 조사 결과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케네디가 총에 맞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 당시 범행 현장을 촬영한 사진 등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고인은 “케네디 암살 배후에 CIA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1953년 CIA 국장에 오른 앨런 덜레스는 1961년 케네디 취임 직후 대통령의 명령으로 경질됐다. 이에 앙심을 품은 덜레스가 오스왈드를 시켜 케네디를 살해한 것이 사안의 본질이라는 게 고인의 설명이다. 60년 가까이 케네디 암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 고인은 2021년 펴낸 저서 ‘케네디 암살을 해부하다’에서도 이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며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이 아니다. 오스왈드는 CIA의 첩자에 불과했음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워런 보고서 내용이 엉터리라는 고인의 지적은 할리우드에서도 화제가 됐다. 케네디 암살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문점을 심도있게 다룬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JFK’(1992)가 탄생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후 고인은 유명인의 별세 소식이나 유명인이 연루된 살인 사건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방송 등에 단골 손님처럼 등장해 사인 등에 관한 나름의 분석 결과를 내놓으며 논란을 일으키곤 했다. 1977년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고인은 “약물 과다 복용이 진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1994년 미식축구 선수 O.J. 심슨이 전처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을 때에는 해설가로 출연해 경찰이 채취한 심슨의 혈액 샘플이 갖는 중요성에 관해 말했다. 2009년 가수 마이클 잭슨이 숨졌을 당시에도 방송에서 약물의 치명적 위험성을 주제로 떠들었다. 한때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발판으로 선거에 출마해 정치인이 되려는 시도도 했으나 이는 실패로 끝났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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