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다른 단체 구기종목과 마찬가지로 야구도 선수 교체가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좀 독특하다. 경기의 승부가 걸린 중요한 시점에 공격하는 팀에서 원래 순번으로 정해져 있던 타자 대신 다른 선수를 내보내는 대타(代打)가 가장 대표적이다. 오늘날 회의나 행사에 참석해야 할 사람이 휴가 등으로 자리를 지키는 게 불가능해 부득이 다른 이한테 해당 임무를 맡길 때 “대타를 보낸다”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대타’가 실은 야구 용어에서 유래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대타와 비슷한 말로 대신 채운다는 뜻의 ‘땜방’이란 단어도 있다. 다만 땜방은 ‘남이 해야 할 일인데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야 하니 그냥 대충대충 한다’라는 의미가 강하다. 대타는 그렇지 않다. 우리 국어사전은 대타를 놓고 ‘여러 경기 조건을 고려하여 원래 타자보다 타격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되는 사람이 한다’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다. 프로야구 선수 김강민(한화 이글스)이 대표적이다. 그는 SSG 랜더스에서 뛰던 2022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9회말 무사 1·3루 상황에 대타로 출전해 역전 끝내기 3점 홈런을 때렸다.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대타가 친 끝내기 홈런이었다. 여세를 몰아 SSG는 우승을 거머쥐었다. 어떻게든 기회를 노린 타자의 집념과 그런 선수를 눈여겨 본 감독의 선구안이 빚은 합작품일 것이다.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왼쪽), 피아니스트 손열음. 빈체로 제공·세계일보 자료사진

야구와는 다르지만 클래식 음악에도 ‘대타’ 개념이 있다. 원래 공연할 예정이던 연주자나 성악가가 건강 등 이유로 갑자기 무대에 설 수 없는 경우 누군가 그를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타는 아마도 미국 피아니스트 앙드레 와츠(1946∼2023)일 것이다. 1963년 당시 16세이던 와츠는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 중 하나인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실은 당대 최고의 인기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 굴드가 갑자기 병이 나자 뉴욕 필하모닉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신예 피아니스트 와츠를 대타로 지목했다. 그렇게 오른 무대에서 와츠는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완벽하게 연주했다. 세계 각지에서 찬사가 잇따르며 무명의 와츠는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1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열린 서울시향 정기 공연에 깜짝 등장한 ‘대타’ 연주자가 한국 음악 팬들의 귀는 물론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이 무대는 애초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출연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인후통과 고열을 호소하면서 미국의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으로 급히 대체됐다. 마침 힐러리 한의 내한이 예정돼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흔쾌히 손열음의 빈자리를 메우기로 수락한 힐러리 한은 서울시향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멋들어지게 협연했다. 연주가 끝난 뒤 청중이 5분 넘게 기립박수를 보냈다고 하니 한국 음악 애호가들도 깊이 감동한 모양이다. 비록 대타였지만 최선을 다한 힐러리 한의 프로 정신이 돋보인다.


김태훈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이브 장원영 '빛나는 미모'
  • 아이브 장원영 '빛나는 미모'
  •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여자)이이들 미연 '순백의 여신'
  • 전소니 '따뜻한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