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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 시절 히틀러에 이은 ‘2인자’였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1897∼1945)가 갑자기 독일 언론에 소환됐다. 베를린 교외에 있는 그의 별장이 골칫덩어리로 전락했다는 내용이다. 괴벨스의 권력이 절정에 달한 1939년 지어진 별장은 부지 면적이 17만㎡(약 5140평)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다. 동·서독 분단 시기엔 동독의 청소년 수련원으로 쓰이기도 했으나 통일 이후인 1999년부터 사실상 방치돼 흉물로 남아 있다. “모든 시설을 없애고 녹지로 만들자”는 주장과 “역사적 의미가 큰 만큼 철거는 불가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한다.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이 9일 신미리애국열사릉에서 열린 전 노동당 선전 담당 비서 김기남의 영결식에 직접 참석해 김기남의 관 위로 흙을 뿌리고 있다. 평양=노동신문·뉴스1

1920년대 중반 20대 청년이던 괴벨스는 히틀러의 연설에 매료돼 나치 당원이 되었다. 타고난 언변으로 ‘선전·선동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으며 히틀러의 핵심 측근으로 성장했다. 나치가 독일 정권을 잡은 1933년 괴벨스는 국민계몽선전부 장관에 임명된다. 히틀러를 향한 그의 충성심은 대단했다. 독일 대중의 머리와 가슴을 온통 히틀러 그리고 나치 이념으로 물들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패색이 짙어진 1944년 7월20일 독일군 일부 지휘관·참모가 히틀러 암살을 시도했다. 히틀러가 죽었다고 여긴 주동자들은 곧 괴벨스 체포에 나섰다. 그런데 괴벨스를 잡으러 갔던 군인들이 그로부터 ‘히틀러는 멀쩡히 살아 있다’라는 말을 듣자 상황이 반전된다. ‘반란군을 소탕하라’는 괴벨스의 명령이 군 전체에 하달되며 히틀러 제거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괴벨스는 독일의 2차대전 패배가 임박한 1945년 4월까지 12년 넘게 선전부 장관 자리를 지켰다. 연합국 일원인 소련(현 러시아) 붉은 군대가 베를린을 향해 진격하던 그해 4월30일 히틀러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후계자로 괴벨스를 지명했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1인자’로서 괴벨스의 삶은 짧았다. 히틀러가 죽고 하루 만인 5월1일 그 또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부인과 여섯 명의 자녀도 함께 저세상으로 갔다. 최고 권력자 일가족의 비참한 최후였다.

 

일 북한 신미리애국열사릉에서 열린 전 노동당 선전 담당 비서 김기남의 영결식 도중 북한군 의장대가 하늘을 향해 조총(弔銃)을 발사하고 있다. 평양=노동신문·뉴스1

9일 북한 조선노동당 전 선전 담당 비서 김기남의 발인식과 영결식이 열렸다. 지난 7일 94세를 일기로 사망한 김기남은 60년 넘게 선전 분야에서 일하며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의 정당성 확보와 우상화에 앞장섰다. 그래서인지 일부 언론은 부고를 전하며 그를 ‘북한의 괴벨스’라고 불렀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현 최고 권력자인 김정은은 김기남의 발인식에서 “우리 당의 참된 충신, 견실한 혁명가, 저명한 정치 활동가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김정은이 발인식은 물론 영결식에도 참석하고 장지까지 동행했다 하니 ‘북한 괴벨스’의 마지막 길은 진짜 괴벨스의 말로와는 사뭇 달랐던 모양이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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