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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몹시 바다가 그리운 날. 차가 있고 운전을 할 수 있다면 고양이 세수를 하고 무작정 바다가 있는 곳으로 달려갈 텐데…. 그럴 수 없어 사진첩을 꺼내 바다 사진들을 본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쏴-해지고,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파도 소리가 울려온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바다! 그토록 좋아하는 바다를 두고 서울에서 산 지도 어느덧 30년을 훌쩍 넘기고 있다. 지금쯤 해운대나 송정 바다는 봄 햇살에 반짝반짝 윤슬을 뽐내며 사람들을, 구름을, 바람들을 유혹하고 있을 텐데….

사진첩을 넘기다 오랜만에 니콜라 드 스탈(1914∼1955)의 바다 그림을 본다. 러시아 출생의 프랑스 화가. 나는 그의 바다 그림을 참 좋아한다. 그는 그가 가장 유명할 때 41세의 나이로 스스로 11층 건물에서 뛰어내린 불운의 화가이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은 모두 다 그렸다며, 이제는 더 이상 그릴 게 없다며. 그를 많이 좋아했던 알베르 카뮈는 그 소식을 듣고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강간”이라며, 매우 비통해했다.

그는 정말 많은 그림을 그렸다. 자신이 그림 자체가 될 때까지 그리고 그렸다. 그림 그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드로잉을 하고 스케치를 하고 그 풍경들을 소화시켰다. 그 때문인지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면 깊은 곳에서 서서히 격정 같은 게 솟아오른다. 그 격정이 절망 속의 희망인지, 희망 속의 절망인지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 그림 속엔 꼭 껴안아 주고 싶은 상심한 휴머니즘과 숭고한 서정미가 배어 있다. 누군가 그에게 왜 그림을 그리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작가도 심지어는 화가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나의 모든 불안, 고통에서 자유롭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했다”고 대답했다. 그만큼 그의 그림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각, 무방비 상태의 깊은 서정이 한껏 녹아 있다.

몇 년 전 강원도 고성에서 한 달 남짓 머물며 ‘시창작수업’을 한 적이 있다. 매일매일 바다를 볼 수 있고, 해변을 산책할 수 있어 참 행복했다. 그때 그는 줄곧 나와 함께 있었다. 고성 바다는 그의 캔버스였고 나는 그 캔버스 안을 걷고 또 걷는 붓이었다. 때로는 그 안에서 길을 잃고 울기도 하고 아주 자유로운 대신 엄청 외롭고 쓸쓸하기도 했지만, 그와 함께 걷는 바닷가는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그곳에서 바다 위로 뜨는 해와 지는 해를 실컷 보았다. 수업할 때만 빼면 늘 혼자였으나 바다에서 만나는 푸른색은, 시시각각 변하는 그 푸른색은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꿈꾸는 꿈 조각 같았고, 나는 그 꿈 조각을 배처럼 타고 다니며 바다와 태양이 주는 강렬한 적막과 멜랑콜리를 맘껏 누렸다. 그 바닷가에 다시 가보고 싶다. 그가 평생을 추구한 “가장 순수한 색, 길들일 수도 없고, 총알도 거의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색”을 어쩌면 그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짧은 순간, 불현듯이!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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