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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세게 넘었다" 유엔 제재 깬 北, 핵대국 향한 ‘레드카펫’ 깔았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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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30 18:56:58 수정 : 2024-03-30 18: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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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서 CCTV를 파손한 것과 비슷하다.”

 

황준국 주유엔대사는 28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다음달 말 활동을 마치게 된 것에 대해 이같은 말을 남겼다. 

북한의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제사회 대북 제재 이행 상황을 감시하고 각국에 철저한 이행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만드는 전문가 패널은 북한에게 ‘저승사자’였고, 국제사회에는 제재 이행의 중요성을 재인식시키는 ‘각성제’였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던 국제적 지위와 힘을 지닌 전문가 패널이 15년만에 활동을 종료하는 것은 20년 동안 차근차근 진행됐던 대북 제재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에는 커다란 외교적 승리나 다름없다. 밀거래, 해킹, 가상자산 탈취 등에 대한 압박과 제약이 훨씬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체제 유지와 핵개발에 필요한 자원 조달은 그만큼 쉬워진다.

 

예전부터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을 받았던 대북 제재가 유명무실해지면서 북한이 ‘동방의 핵대국’ 지위에 한층 다가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노골적인 비협조, 이번이 처음 아니다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안보리 결의 1874호에 따라 만들어진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을 무력화시킨 러시아는 그동안 북한 제재 문제와 관련, 가장 노골적으로 비협조적인 자세를 취했다.

 

러시아가 자국의 기술통제와 대북 제재 이행을 엄격하게 집행했다면, 북핵 위협이 이정도로 고도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13일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난 2018년 9월 18일 유엔 안보리에서는 이같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시 러시아는 유엔 전문가 패널에 압력을 행사해 대북 제재 이행 보고서를 수정했다.

 

이에 대해 니키 헤일리 당시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러시아의 제재 위반은 일회성이 아니라 체계적”이라며 “자국 기업들이 유엔 제재가 금지한 활동에 관여하는 길을 찾도록 해주고, 이를 은폐하는 데도 집중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다”며 성토했다.

 

그는 “러시아가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제재 위반을 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며 “북한이 올해 8월까지 불법적인 선박간 환적으로 148차례 정유를 제공 받은 것을 추적했다”고 말했다.

 

또 “북한은 지금도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정유를 불법적으로 획득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불법 환적에 개입한 선박들을 유엔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는 일을 막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의 군사프로그램 자금조달 활동을 해온 북한 요원의 추방을 러시아가 거부하고 있고, 그의 모스크바 은행계좌 차단 요구도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일 공개된 유엔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서는 러시아와 북한의 무기거래와 관련, 다수의 증거가 발견됐으나 “러시아가 북한 무기 수입을 부인하거나 관련 의혹에 답변을 주지 않은 상태”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북한의 바다수리-6형 지대함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수면 위로 드러난 제재 위반 사례보다 더 심각한 것은 북한 핵·미사일 기술에서 러시아의 흔적이 엿보인다는 점이다. 핵심 기술의 출처가 러시아 또는 옛소련 과학자들과의 교류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러시아가 기술 유출을 방조하거나 협력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북한이 2014년 처음 공개한 대함미사일을 보자. 이 미사일은 러시아산 kh-35와 매우 유사하다. 1992년에 첫 공개된 kh-35는 바다 위를 낮게 날아가 함정을 격파한다.

 

옛소련 시절의 스틱스미사일보다 기술적으로 진보한 kh-35는 북한의 해상타격력을 한 단계 높이는데 기술적 토대가 됐다. kh-35를 토대로 대함미사일을 만든 북한은 지난 2월 신형 대함미사일인 바다수리-6형을 선보였다. 

 

북한 중장거리 미사일의 핵심 장비인 백두산 엔진도 마찬가지다. 백두산 엔진이 공개되기 전까지 북한은 스커드 엔진을 사용해서 은하-3호 로켓 등을 만들었다. 탑재중량과 사거리 등에서 한계가 뚜렷한 것이었다.

 

그런데 북한은 갑자기 백두산 엔진을 선보이고,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과 화성-14·15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만들어 미국을 위협했다. 백두산 엔진이 북한의 개발품이라면, 스커드 엔진과 백두산 엔진의 중간단계 역할을 하는 엔진이 먼저 등장했어야 했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이 발사되고 있다. 노동신문·뉴스1

백두산 엔진의 원형이 옛소련이 1960년대 개발한 RD-250 엔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이유다. RD-250은 우크라이나 업체인 유즈마시에서 제작했지만, 우크라이나는 20여년 전에 RD-250 전량을 러시아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RD-250 엔진 설계를 러시아 에네르고마시에서 했다는 점에서 러시아가 모종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북한이 2018년 처음 공개했던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러시아산 이스칸데르 미사일의 영향이 엿보이는 무기다.

 

이처럼 북한 대량살상무기의 기술적 근원이 러시아에 있다는 의혹이 쌓여왔지만, 러시아는 대북 제재의 집행에 있어 비협조적 태도를 유지해왔다.

 

유엔 전문가 패널의 활동을 종료시킨 것은 이같은 기조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한국을 비롯한 북핵 당사국들이 ‘중국 역할론’에 매몰되어 있었을 때, 북핵 문제의 책임자이면서도 북핵 개발을 저지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좌절시킨 장본인이 러시아였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전문가 패널의 활동 종료로 감시자가 사라진 러시아와 북한은 대량살상무기를 매개로 한 ‘더러운 동맹’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러시아를 통해 북한은 한·미·일을 위협할 핵·미사일 관련 기술과 원자재, 장비 등에 대한 접근이 한층 수월해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쓸 무기를 확보하는데 있어서 국제사회의 시선을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다. 유엔에서의 1표가 한반도에 태풍으로 다가올 위험이 높아지는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군수공장을 시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北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 대가가 이거였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북한은 커다란 전략적·경제적·외교적·안보적 선물을 받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1만 컨테이너 분량의 탄약과 탄도 미사일을 제공한 대가인 셈이다.

 

제재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했던 북한은 비록 제재가 풀리지는 않았으나, 자신들의 불법적 행동을 감시하고 전 세계에 알려왔던 전문가 패널이 사라짐으로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압박이 사라지면서 사실상 일부 제재 완화 효과를 얻게 된 것이다.

 

북한이 서울에서 미국 워싱턴에 이르는 인도태평양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탄도미사일을 다수 개발했지만, 미사일을 생산해서 배치하려면 외국의 부품과 장비가 필요하다. 

 

영국 무기감시단체 분쟁군비연구소(CAR)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지난 1월 2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 떨어진 북한 탄도미사일 잔해에서 나온 부품 290개 중 75%가 미국회사 제품이었다.

북한 군수공장에 보관중인 미사일발사차량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미사일에 쓸 부품을 외국에서 들여오려면 밀거래를 해야 하는데, 중개상들은 자신의 행위가 공개되어 처벌받을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문가 패널이 활동하지 않는다면, 이같은 문제도 줄어든다.

 

북한이 이를 지렛대 삼아 공급망을 확충한다면, 북한군이 쓸 대량살상무기 재고가 늘어날 정도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 결의가 시도될 때마다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제재 완화를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유엔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 조건으로 대북 제재에 일몰 조항을 신설하자고 요구했다. 북한으로선 향후 핵·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유엔의 제재를 의식할 필요가 사라지는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진행중인 러시아는 향후 유엔 안보리를 비롯한 외교무대에서 ‘북한 감싸기’를 지속하고, 대북 제재를 더욱 노골적으로 위반하며 대량살상무기 관련 ‘은밀한 거래’를 한층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를 통해 핵능력을 더욱 강화, 미국을 더욱 강하게 압박할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추구할 전망이다. 제재망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지금, 이를 저지할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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