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력·돌파력·통찰력·사명감 강점 "야구의 희생정신 늘 생각"
"오갈데없는 선수 위한 야구 전문대 설립, 프로야구 감독도 꿈꿔"
"투타 겸업하다가 망한 경우니까, 기업인들 만나면 문어발 하지 말라고 해요. 한 가지에 집중하라고요."
1980년대 선린상고 시절 훤칠한 외모와 천재적인 실력으로 이름을 날리던 야구 스타가 이달 1일부터 전북 완주의 우석대학교 총장으로 일한다. 박노준 총장(61) 이야기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프로선수 출신 특유의 추진력과 돌파력이 묻어났다.
'투타 겸업을 해 아쉬운 프로 성적을 남겼다'는 아픈 비판이 여전히 뒤따르지만, 이젠 다 과거의 일이라는 듯 유머로 넘겼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 최초로 안양대 총장으로 임명된 박 총장은 연임한 뒤 이번에는 우석대로 자리를 옮겨 학령인구 감소 위기 속 대학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 "평생 야구만 할 수는 없어…언제나 미래 준비"
"몸이 약해서 시작한 야구였어요. 입이 짧은 탓인지 몸이 허약한 외동아들이 안쓰러워 아버지께서는 3개월만 해보라고 야구부에 데려가셨습니다."
가볍게 시작한 야구였지만 재밌었다. 운동을 하느라 허기가 져 밥을 잘 먹으니 아버지도 만족스러워했다. 그렇게 5학년 때부터 야구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다음부터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선린중학교, 선린상고에서 천재적인 야구 실력을 뽐냈고 OB 베어스에 입단해 해태 타이거즈, 쌍방울 레이더스를 거쳐 은퇴했다.
하지만 고교 야구 스타였던 만큼 프로선수 시절 부침도 컸다. 유난히 부상이 잦아 벤치에서 동료 선수들을 바라봐야만 하던 때도 있었고, 2군 리그로 강등되기도 했다.
당시엔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이런 시련들은 선수를 그만두고 사회에 나왔을 때 소중한 자양분이 됐다고 한다.
"부침을 겪고 나니 넉살 좋게 도와달라거나 스스로를 소개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았죠. '체면만 차리다 보면 득이 될 게 없다'는 나름의 진리를 체득하게 됐습니다. 또 안 좋았던 시기가 있으면 반드시 올라갈 때가 있다는 걸 깨닫고 기다릴 줄도 알게 됐고요."
때를 기다린다는 건 야구를 관통하는 진리이기도 했다.
"1위 팀이라도 정규시즌 144경기 중 3분의 1은 집니다. 10위 팀이라도 3분의 1은 이기죠. 오늘은 졌더라도 내일은 이길 수 있고, 오늘 이겨도 내일은 질 수 있기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하는 게 야구입니다."
매서운 통찰력은 미래를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죽어라 했던 야구지만 평생 야구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고교 출신 선수들이 지도자를 꿈꾸며 체육학과를 진학할 때 그는 고려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이후 성균관대에서 스포츠산업학 석사를, 호서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릴 때부터 은퇴하면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할까 하는 현실적인 고민을 했죠. 언젠가는 회사를 운영해보고 싶었고, 그러려면 이론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어요. 그때부터 좀 유별났던 모양이에요."
이 경력은 그를 교육자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2007년 서울과학기술대를 시작으로 호서대나 우석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물론 은퇴 후 미국 메이저리그 지도자 연수를 밟고 우리 히어로즈 단장을 역임하고 나서야 강단에 섰다. 돌아보면 교육자의 길은 프로선수 생활을 하면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항상 준비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성격이 이런 길로 이끌었죠. 준비만 된다면 무엇을 하고 있든 누군가가 나를 찾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실패의 순간이 있더라도 결국 성공이 더 많았지 않았나 싶고요."
◇ "스포츠에 경영을 더하고파…대학 구성원 제역할·희생에 감사"
야구에는 흔히 인생이 담겨있다고 한다.
박 총장 역시 선발·중반·마무리 투수나 지명타자, 외야수·내야수처럼 분업화한 야구의 체계를 설명하며 인생에 빗댔다.
"야구는 특히 희생을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스포츠입니다. 스스로 아웃을 감수하고 동료를 내보내는 희생은 팀 득점을 위한 전략이나 작전이기 때문이지요. 기록으로까지 남기는 희생의 의미를 늘 생각해야죠."
학교 업무도 야구와 일맥상통한다. 각자 뛰어난 교수나 직원들이 제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고, 이를 위해 희생하기도 한다. 총장 역시 그런 자세에 서 있어야 한다.
"그런 구성원들 덕분에 총장의 업무가 편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총장은 최종 결정을 하죠. 책임을 지면 되는 문제가 아니라, 대학이 휘청할 수 있기에 굉장히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야구에서 인생을, 그 인생에서 총장의 역할을 고민할 만큼 총장 자리는 비교적 익숙해졌으나 역시나 평생 교육자의 길만 걸을 생각은 없다.
우리 히어로즈 단장 시절 스포츠에 경영을 더해 '유니폼 마케팅'을 적용했던 것처럼 언제든 야구와 경영을 활용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야구 아카데미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대학 진학의 경계에 선 선수 중 오갈 데 없는 선수들이 많거든요.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야구를 더 열심히 할 환경을 만들어 주고, 사회에 나가서 적응할 수 있도록 전문대학 수준의 칼리지도 만들고 싶어요."
물론 야구 지도자의 꿈도 품고 있다. 젊은 야구 감독이 대세이긴 하지만, 한화 이글스의 사령탑으로 일흔이 넘은 김성근 감독이 선임한 사례가 있으니 허황한 꿈은 아니다.
"기회가 쉽게 오지 않겠지만 혹시나 제안이 있다면 언제든 할 생각은 있어요. 경제적으로 풍부해지면 유소년팀을 만들어 선수도 양성해보고 싶고요. 야구와 경영 이론을 누구보다 뒤지지 않게 무장하고 있다고 자신해요. 누군가는 제게 '감히, 네가'라는 말을 하겠지만 두려움을 갖지는 않아요."
◇ "열심히 넘어 잘해야…우석대 100년 성장 그리겠다"
안양대 총장을 연임했으니, 우석대 총장은 세 번째 총장 역할이다.
야구선수 출신으로는 최초 총장이지만, 후배 선수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박 총장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넘어 잘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크다.
"총장이 아니더라도, 운동 외의 분야에서 뛰어난 역할을 할 선수 출신들이 많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잘해야죠."
그 사명감은 3월 내내 매일 오전 6시 30분에 대학에 출근하는 것으로 풀어냈다. 취임하자마자 모든 대학이 사활을 걸고 있는 '글로컬대학 30'에 집중하기 위해 취임식도 마다하고 글로컬 대학 예비 지정 신청 접수일인 22일까지 쉼 없이 일했다.
"학령인구 급감이라는 만만치 않은 허들이 놓여 있어요. 하지만 야구가 그렇듯, 위기가 마냥 위기는 아닙니다. 잘 버티며 도약해야 할 토대를 만들어야죠. 앞으로 2∼3년이 우석대 100년을 좌지우지할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글로컬 역량을 키우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우석대는 특성화 분야인 수소와 이차전지 등을 토대로 글로컬 대학 도전장을 냈다. 또 연합모델을 구상한 군장대와 함께 외국인 유학생과의 국제교류를 높일 예정이다.
이외에도 평생교육을 더욱 활성화하고 배움에 목말라 있는 직장인들이 우석대를 찾아 갈증을 채울 수 있도록 계약학과 개설을 통한 직장인 특별전형 신설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인구 감소를 대학 총장이 당장 해결하긴 어렵지만, 외국인 유학생 유치나 평생교육 활성화에 대한 질을 높일 수는 있죠. 이런 다층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며 대학이 맞닥뜨린 위기를 타개하고 기본을 바로 세울 겁니다."
박 총장은 현재 자신의 위치를 야구 경기의 6∼7회 이닝에 비유했다.
경기의 절반은 지났으나, 프로야구가 끝나는 9회까지는 시간이 충분히 남았으니 더 다양한 것들을 시도해 볼 거라는 의미다.
"평생 스스로를 엄격하게 대하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살았어요. 쉬면 되레 몸이 아픈,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 팔자겠다 싶어요. 우선 우석대에 재직하는 동안은 최선을 다하고, 결론적으로 잘 해냈다는 평가를 받도록 우석대의 성장만 생각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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