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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떠나는 MZ, 잡을 수 있을까 [편집인의 원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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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31 14:30:00 수정 : 2024-03-31 14: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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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깔린 많은 종이들 가운데 하나를 탁 집어 책상 위에 올려놓는 일. 흔히 언론의 역할로 불리는 어젠다 세팅(Agenda Setting·의제 설정)이 그와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그 중에 뉴스 소비자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과 취재를 거쳐 우리가 내놓는 기사(어젠다)는 독자에 말을 거는 일이다. 뉴스 수명이 갈수록 빨라지는 요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세계일보만의 기사를 소개한다.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 ‘충TV’ 를 운영하는 김선태 주무관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경기 김포시 공무원을 추모하기 위해 올린 영상.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이 문구가 적힌 영상에는 모차르트 레퀴엠 8번 ‘라 크리모사’가 흘렀다. 

 

구독자수만 65만명이 넘는 ‘충주시 홍보맨’ 김선태 주무관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경기 김포시 공무원을 추모하기 위해 올린 영상이다. 70만 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한 이 영상에 그는 ‘악성민원으로부터 공무원을 지켜주세요. 부탁드립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충주시 공식 유튜브 채널 ‘충TV’로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유명해진 김 주무관은 자신이 악성 민원인을 연기한 영상도 만들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여러 번 당해봐서 그분(악성민원인)들 말투, 스타일이 다 연구돼 있다. 산척면 9급 공무원 시절부터 동네 어르신들한테 지팡이로 맞아가면서 일했다”고 했다.

 

과도한 악성민원에 노출되는 일은 젊은 공무원들이 일터를 떠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악성민원에...2030 공무원 절반 “이직 희망”’(3월25일자·이병훈 기자, 포항·창원=이영균·강승우 기자) 기사는 일선 현장에서 악성민원인들에 시달리면서도 상급자나 기관 요구에 참을 수밖에 없는 공무원들의 고충을 다뤘다. 행정연구원의 ‘2023년 공직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직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8∼9급 공무원 중 ‘매우 그렇다’ 또는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54.7%로 절반을 넘겼다. 전체 공무원의 응답 비율(47.6%)에 비해 높은 수치다. 20대에서는 무려 59.2%가 이직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일 경기 김포시청 본관 앞에 마련된 김포시 9급 공무원 A(39)씨의 추모공간에 동료 직원들이 찾아 애도하고 있다. 김포=강승훈 기자 

◆MZ 공무원들이 떠나는 이유

 

지난해 임용된 지 5년이 안 된 공무원 1만3566명이 사직서를 썼다. 1년 차에 그만둔 공무원도 3000여명이나 됐다. 2022년 1만3321명보다 늘었는데 2019년 6663명이었으니 4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일반 기업에 비해 임금이 낮은 이유가 가장 컸지만 악성민원, 폭언 등과 같은 부당한 처우도 주요 이유였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8월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 조합원 18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최근 6개월간 폭언을 경험한 공무원은 88.9%에 달했다. 숨진 김포시 공무원처럼 온라인에 실명과 전화번호가 노출되는 ‘좌표찍기’도 종종 벌어진다. 

 

공무원노조 관계자들이 8일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김포시 공무원 노제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악성 민원 대책과 인력 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제공.

악성 민원을 경험한 이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서울 자치구 공무원 A씨는 10여년 전 주민센터에서 겪은 악성민원 경험을 아직도 잊지못한다. 교도소를 갓 출소한 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해 달라는 민원인에게 “기초수급자 요건이 안 된다”고 말했다가 폭언과 협박에 시달렸다. 그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떨린다. 이후 한동안 민원인을 대하기가 몹시 두려웠다”고 했다. 3년전 민원인이 포항시 공무원에 염산이 든 생수병을 뿌려 화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 있었던 공무원도 “당시 사건이 아직도 가끔 꿈속에 나타난다”고 호소했다.

 

김승호 인사혁신처장이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무원들의 이직을 줄이고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연합뉴스

◆“고소·고발은 언감생심”

 

악성민원에 따른 극단적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회적 관심이 컸지만 현장 공무원들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 대부분 참고 지나가라는 상급자, 기관의 요청에 별다른 법적 대응 없이 감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악성 민원을 경험하고도 실제 법적 대응을 한 비율이 2%에 그치는 이유다. 최근 경남 창원시공무원노조 홈페이지에는 ‘민원인한테 이유 없이 쌍욕을 X먹었다’는 글이 올라왔는데 글쓴이는 오히려 감사실로부터 민원인에 사과하라는 종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피해자는 나인데, 왜 사과를 하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MZ 공무원들 사이에 “우리가 공노비냐”는 자조섞인 불만이 나올 만하다.

 

정부는 보도 이후 저연차 공무원들에 승진 기회를 확대하고 연가를 늘리는 등 인센티브 방안을 내놓았다. 26일 행정안전부와 인사혁신처가 발표한 방안에 따르면 6급 이하 실무 국가직 공무원 2000여명의 직급을 올리고 9급에서 4급으로 승진하는 최저연수도 13년에서 8년으로 줄인다.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도 강화하고 연가 일수, 자녀 육아 시간도 늘리기로 했다. 악성민원에 노출되는 민원 담당 공무원 대책도 내놓았다. 민원업무수당 추가 지급, 승진시 가점 부여, 상담 진료비 지원 등이 골자다. 이 정도 대책으로 떠나는 젊은 공무원들 발길을 붙잡을 수 있을까. 공무원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인만큼 ‘반짝 관심’에 그쳐선 안될 일이다. 

 

P.S. 취재한 이병훈 기자에 물었습니다.

 

-‘악성민원 시달리는 2030공무원’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사실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공무원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김포시 공무원 사망 사건의 ‘신상털기’를 보면서 악성민원이 이처럼 조직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에 놀랐다. 다양한 악성민원 사례와 공무원 사회의 대응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짚기 위해 기사를 기획하게 됐다.”

 

-4년새 2배 가까이 늘어날 정도로 저연차 공무원들이 이직하는 추세인데 주요 요인을 꼽는다면.

 

“관련 조사에서는 낮은 보수가 1순위였다. 최근에는 인사혁신처에서 “9급 공무원 초봉이 병장보다 높다”는 웃지 못할 해명자료까지 내놓기도 했다. 직무 상 스트레스 요인은 ‘악성민원 대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 같아도 민원인의 폭언을 견디면서 적은 월급으로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정부가 며칠전 공무원 업무 여건 개선을 위한 방안을 발표했는데 얼마나 효과적일까.

 

“취재 과정에서 공무원노조 측이 가장 강조했던 것이 악성민원에 대한 기관 차원의 적극적 대응이었다. 정부의 이번 방안에서 이같은 점이 강조돼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본다. 사후 대처가 아닌 사전 예방과 관련한 방안이 충분히 제시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월급 인상 빼고는 다했네’라는 공무원 커뮤니티 반응이 인상적이었다.”

 

황정미 편집인

 

<관련기사>

 

폭언·폭행당해도 ‘친절’ 강요… 상사 압박에 고소는 2%뿐 [심층기획-악성민원 시달리는 2030 공무원]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324508539

 

막무가내식 자료 요구·정보공개 청구 빗발 ‘악소리’ [심층기획-악성민원 시달리는 2030 공무원]

https://www.segye.com/newsView/2024032450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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