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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한국형 아우토반’에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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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28 23:22:07 수정 : 2024-03-28 23: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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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로에서 시속 200㎞ 가까운 속도로 질주하던 포르셰 911이 날렵하게 2차로로 차선을 변경했다. 저 멀리서부터 굉음을 내며 거리를 좁히던 페라리에게 길을 내주기 위해서였다. 페라리는 멋진 엔진음만 남긴 채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멀어졌다. 독일 고속도로인 ‘아우토반’ 2차로를 달리다가 본 모습이다.

독일에 잠시 살던 시절, 아우토반에서 ‘미친 속도’를 ‘더 미친 속도’가 추월하는 이런 상황을 드물지 않게 경험했다. 놀라운 지점은 속도 제한이 없어도 늘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대중차와 고성능차, 슈퍼카가 제각각의 속도로 달리면서도 사고는커녕 시비가 붙은 것도 본 적이 없다. 권장 속도(시속 130㎞)를 터무니없이 초과하는 차는 그리 많지 않기도 하거니와, 1차로를 철저하게 추월 차로로만 쓰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빨리 달리는 차라도 더 빠른 차가 오면 지체 없이 2차로로 옮겨야 한다.

백소용 산업부 차장대우

질서 정연한 독일 아우토반에 익숙해지고 나서 한참 뒤 한국의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해 보니 혼란스러웠다. 1차로에는 늘 낮은 속도로 정속 주행을 하는 차가 있고, 이 차를 피해 2차로를 이용해 추월하는 차, 비켜주지 않고 버티는 차가 섞여 도로 흐름이 엉키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기 때문이다.

우리 도로교통법에도 고속도로의 1차로는 추월 차로로 정해 추월할 때만 사용해야 한다는 내용은 있지만, 운전자들이 실제 도로에서는 이를 의식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국내에도 속도 제한이 없는 ‘한국형 아우토반’을 추진한다. 광주와 전남 영암을 잇는 47㎞ 구간에 약 2조6000억원을 투입해 초고속도로로 만든다는 것이다. 영암에는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 원(F1) 경기장이 있는 만큼 자동차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도로를 만들고 향후 다가올 자율주행 등의 차세대 도로 체계도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이 고속도로의 선심성 논란은 뒤로하고, 다양한 모빌리티의 경쟁력을 키우고 자동차 문화를 만들기 좋은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에서 속도 제한을 없앤다면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우선 운전 의식을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안전하게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추월 차선을 철저히 지켜야 하고 운전자 간의 배려도 필요하다. 아예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 고속도로에서 규칙에 맞게 주행하는 법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무엇보다 ‘한국형 아우토반’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에 앞서 필요한 것은 현실적인 수준의 제한속도 상향이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의 설계속도는 최고 시속 120㎞로 설정돼, 기본 제한속도는 100∼110㎞이다. 최고속도 시속 150∼160㎞대의 포니, 브리사 등이 달리던 1979년에 마련된 기준이다. 과거보다 교통량이 월등히 늘어난 데다 차량 성능과 도로 건설 기술도 좋아진 만큼 고속도로의 설계속도를 높이자는 논의가 나온 지 10년 이상 지났지만 진전이 없다. 세계 판매량 3위의 완성차 제조사를 보유한 자동차 강국 한국의 고유한 고속도로 체계 구축을 진지하게 시작해야 할 때다.


백소용 산업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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