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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말’ 뒤에 조사 ‘을’이 생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의 ‘말’은 글말이 아니라 입말이다. 그 사람이 글을 잘 짓는다는 게 아니라 대화를 능숙하게 한다, 언변이 좋다는 뜻이다.

한국어는 조사가 아주 중요하다. 표현에서 더하고 덜 중요한 게 있으랴만, 낱말을 모아 문장을 만들 때 그것이 뜻과 기능을 매우 좌우하기 때문이다. 단어가 놓인 위치보다 그것에 붙은 말이 큰 역할을 하는 게 한국어의 특징 중 하나이다.

‘말 잘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에 조사 ‘을’이 아니라 ‘은’이 생략되었다면, 매우 다른 뜻이 된다. ‘말은 잘하는 사람’은 말과 행동을 구별하고, 말보다 행동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을 바탕으로 말이 앞서고 실천은 따르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느낌이 묻어난다. 이는 그것을 ‘말도 잘하는 사람’, ‘말까지 잘하는 사람’과 비교해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그러면 ‘말만 잘하는 사람’은 어떤가? 앞의 ‘말은 잘하는 ∼’과 비슷하지만 뜻이나 말맛이 더 세어 보인다. 비판을 지나 비난하는 느낌이 감지된다.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별로 이롭지 않은 존재라는 생각까지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말만 잘할’ 수 있는가? 대화도 사람이 하는 행동의 하나인데, 말과 행동의 구별이 어디까지 가능하며, 나아가 평가까지 따로 할 수 있는 것일까?

말과 그것의 실천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 반성하고 경계하려는 의도로 ‘말만 잘하는 사람’ 같은 표현이 생겼을 터이다. 하지만 본디 ‘말만 잘하기’는 어렵다, 내면 활동까지 포함하여 행동과 말은 분리하기 어려우므로 그러기 곤란하다고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행동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말도 잘못하며, 면밀히 들어보면 그의 미끈한 말에도 됨됨이를 가릴 무엇이 들어 있다는 판단에 이른다.

본래 입말은 금세 사라지지만, 매체혁명이 일어나서 가상공간에 올라온 말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나서는 선거철이 되어 후보 검증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데, 가장 흔한 자료가 말이다. 조사 하나를 잘못 써도 엉뚱한 뜻이 되니 실수였다는 변명이 요란하지만, 사실은 그게 ‘말만 잘하는’ 증거일지 모른다.


최시한 작가·숙명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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