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실명에도 무죄…인과관계 증명 어려워
정부 “특례법으로 환자 전액 보상도 가능한 구조”
최근 서울 강남의 대형 안과에서 라식 수술을 했다가 복시 증상 등 부작용을 앓고 있다는 사연이 화제가 됐다. 의료 사고로 갈등을 빚는 환자와 의료진을 위해 정부가 ‘의료분쟁 조정 제도’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제 개인이 보상을 받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필수의료 분야에서 과실로 환자 사망사고를 냈더라도, 의료진이 보상 한도가 정해지지 않은 종합보험에 가입했다면 형을 감면받을 수 있게 하는 특례법 제정을 발표했지만 의료현장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고 발생 시 환자가 증거를 수집하고 사실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의료 사고 특성상 환자의 피해 구제를 더 어렵게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안에 따르면 응급·중증질환·분만 등 필수의료 행위의 경우에는 환자에게 중상해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공소를 제기할 수 없게 된다. 특례법은 의료인의 업무상과실치상죄 또는 중과실치상죄에 대해서는 다른 법률보다 우선 적용된다. 또한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보상한도가 정해진 보험)에 가입한 경우 미용·성형을 포함한 모든 의료 행위 과정에서 과실로 환자에게 상해가 발생했더라도 환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반의사불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책임보험·공제에 더해 ‘종합보험·공제’(피해 전액 보상 보험)에 가입했을 때는 과실로 환자에게 상해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공소 제기를 불가능하게 했다.
◆의료사고, 환자는 피해 증명 어려워
환자단체 등이 해당 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환자들은 의료사고가 나면 피해회복에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증거 조사를 위해 형사고소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특례법으로 형사고소가 제한된다면 피해자인 환자와 가족들은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특례법이 발표됐을 당시 환자단체연합회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은 “의료 사고 입증 책임을 의료인에게 전환하는 내용 등도 없이, 의사의 의료 사고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특례법 제정을 정부가 추진하는 데 강력히 반대한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실제로 수술 후 시력 상실 등 심각한 피해를 입었더라도 법정에서 인과관계 증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2021년에는 눈 밑 지방 제거술을 받고 환자가 실명한 사건에서 성형외과 의사가 무죄를 선고받았다. 환자 A씨는 2014년 눈 밑 지방 제거술(하안검 성형술)을 하고 다음 날 출혈과 부종 등 증상을 호소한 끝에 오른쪽 눈이 실명됐다. 당시 검찰은 환자가 지혈을 억제할 우려가 있는 아스피린을 수술 전날 복용했는데도 의사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그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이 눈 밑 지방 제거술을 시행하는 과정에 업무상 과실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공소가 제기된 것이 아니고, 업무상 과실을 인정할 분명한 자료도 제출돼 있지 않다”며 “피해자가 수술 전 아스피린을 복용한 것이 수술 후 출혈의 원인이 됐다는 의학적 근거도 뚜렷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한 “환자 퇴원 당시 이상 증세가 있었다거나 일반 환자들과 다른 징후가 있었다고 볼 자료도 없다”고 설명했다.

2008년에는 생후 21개월된 아이의 각막 봉합수술을 마친 후 의사가 수술결과를 제대로 관찰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정됐음에도 배상 책임을 50%만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005년 생후 21개월된 아이가 철사로 된 머리핀을 가지고 놀다가 눈을 찔려 이튿날 인천의 한 병원에서 각막 봉합수술 등을 받았는데, 병원이 수술 뒤 망막 박리증상을 뒤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아이가 실명된 사건이었다.
재판부는 “생후 21개월된 아이의 각막 봉합수술을 마친 9일째 초음파 검사에서 유리체의 출혈을 의미하는 소견을 발견하고도 수술 뒤 12일째와 17일째에 초음파 검사를 하지 않았고 23일째에야 망막 박리증상을 발견했다”며 “이로 인해 천공된 망막이 뭉쳐진 상태에서 망막 박리수술을 받는 바람에 견인된 망막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해 아이의 눈이 실명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 병원이 망막 박리증상을 조기에 발견해 유리체 절제수술을 시행했다고 하더라도 아이의 시력이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점을 감안해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50%로 제한한다”고 판시했다.
◆정부 “환자·의사 모두 ‘윈윈’ 확신”
정부는 특례법으로 환자와 의사가 모두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지난달 사고 발생 시 입증 책임을 의료인이 져야 한다는 환자 단체들의 주장에 대해 “이런 특례를 적용받으려면 의료인이 중재 절차를 수용해야 한다”며 “이 절차에서 피해에 대한 전문적 평가·감정이 있을 거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 사고에 대한 입증 책임 부담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사고에 관한 소송 승소율이 굉장히 낮아 실질적으로 보상받을 길이 없던 환자들은 특례법에 따라 (의료진이) 종합보험에 가입했을 경우 피해에 대해 100% 전액 보상을 받는 구조”라며 “의료진은 배·보상 체계에 가입해 법적 보호를 받음으로써 환자와 의사 모두 ‘윈윈’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부는 ‘의료분쟁 조정·감정 제도혁신TF’를 구성해 조정과 감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고 조정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 등을 마련할 방침이다. 이는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제정과 함께 소송이 제기되기 전 환자와 의료인이 충분히 소통하고 합의할 수 있도록 분쟁 조정과 감정 제도를 혁신하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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