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9277억엔(약 26조3000억원) vs 300만엔(약 2600만원) 미만’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성과와 과제를 짚으며 제시한 숫자다. 한쪽은 2022년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이고, 다른 한쪽은 같은 해 프리랜서 애니메이터들 절반 이상이 밝힌 연간 수입이다. 한국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미국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오르는 등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성장세는 여전하지만 과제 또한 만만찮다는 게 닛케이의 진단이다.

‘그대들은∼’이 거둔 놀라운 성과는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의 높아진 세계적 위상을 보여준다. 북미 지역 오프닝(2023년 12월 8∼10일) 성적은 1280만 달러(약 168억9000만원)였다. 해외 50개국에서 개봉해 1억6000만 달러(2112억원) 이상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북미 지역 개봉관은 2205곳이었는데 같은 감독의 2002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개봉관이 26개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닛케이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개봉 당시 틈새시장이었던 일본 애니메이션은 주류 장르가 됐다”는 전문가의 평가를 전했다.
‘그대들은∼’ 홍보활동이 거의 제로(0)였다는 점에서 이런 성적은 더욱 놀랍다. 제작사인 지브리스튜디오는 예고편 상영, 시시회 등 일반화된 홍보활동조차 하지 않았다. 팜플렛도 개봉 한 달 후에야 나왔다. 닛케이는 “내용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게 소비자의 관심을 모은 측면이 있다”며 “최소한의 예고만으로 관객을 모을 수 있었던 건 지브리나 미야자키 감독의 브랜드파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일본 영화 시장을 이끈 건 ‘그대들은∼’을 포함한 애니메이션이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이 일본 시장 흥행 톱4를 차지했다.
일본 국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은 세계시장에서 큰 성장세를 보였다. 2022년 애니메이션 시장은 2조9277억엔으로 전년 대비 7% 성장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소비자의 절반 정도가 해외 팬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이같은 성장세를 근거로 일본경제단체연합회는 2033년까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포함한 일본 콘텐츠의 해외시장 규모 목표치를 2033년 기준 20조엔(179조5000억원)으로 상향조정했다.
하지만 이같은 성과가 애니메이션 산업 전반의 혜택으로 연결되지는 않고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시장조사전문기관 데이코쿠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제작사 31%가 2022년 적자를 기록했다. 닛케이는 “높은 퀄리티가 요구되는 데 따른 비용 상승, 인력부족 등에 따른 인건비 부담 증가가 수익을 압박하는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젊은 애니메이터들에 대한 처우개선도 숙제로 지적됐다. 닛케이는 “애니메이션 산업에 종사하는 프리랜서 1132명을 대상으로 한 2022년 조사에서 전체의 51%, 20대의 약 80%가 2021년 한 해 수입이 300만엔 미만이라고 답했다”며 “차세대 애니메이터나 감독을 육성해 일본 애니메이션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지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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