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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서 안전모 쓰고 일하나”…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한달, 현장은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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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06 05:50:00 수정 : 2024-03-06 10: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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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자가진단? 처음 봐요”
정부 제공하는 중처법 대응 가이드라인
대부분 건설현장·제조업에 해당 사항
마켓·식당서 ‘사망사고 대응’ 비현실적

아직도 ‘준비중’인 영세기업들
업종 특성 무시한 채 일괄적인 법 적용
“예산 없어서…” “의무사항 너무 많아서…”
상당수 업계 어려움… 헌소 청구 움직임도

100점 만점에 30점. 서울 성동구 한 식품유통업체의 안전보건관리체계 자가진단 결과다. 직원 8명을 고용하고 있는 이 사업장은 전형적인 사무실에 가깝다.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상품을 저장하는 창고에 가면 높은 곳도 있으니, 아예 위험하지 않다고 할 순 없지만 결과가 너무 안 좋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A씨 회사가 낮은 점수를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안전보건 조직 또는 업무 담당자를 정하고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해서다. 이 회사는 소규모 도소매 사업장으로 분류돼 의무적으로 안전보건 관리자를 배치하지 않아도 되지만, 자가진단 문항은 이러한 부분이 고려되지 않았다.

 

지난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5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전면 적용된 지 1개월이 지났지만, 대다수의 사업장은 여전히 대응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안전사고로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 경영책임자가 안전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해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산업재해를 막고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지만, 실질적으로 위험 요소가 거의 없는 영세 사업장에도 일괄적으로 법이 적용된다.

정부는 중소 사업장이 중대재해법 대응에 참고할 수 있도록 안전보건관리체계 자가진단 문항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일보가 최근 만난 자영업자들은 한목소리로 “사업장 규모와 개별 업종의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데다가 문항 자체가 모호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오히려 현장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식당에 안전모 필요한가요?”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마련한 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 자가진단은 총 12개 문항으로 이뤄져 있다. ‘위험도 및 대응’ 2개, ‘안전보건관리체계 세부 항목’ 10개로 구성된다. 응답은 5점 척도로, 점수가 높을수록 산재예방 정책을 적극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서울 관악구에서 직원 6명 규모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B씨는 자가진단표에 대해 “처음 본다”고 말했다. B씨는 자가진단에서 44점을 받았다. 문항을 살펴본 B씨는 ‘개인보호구 구입 등 안전·보건을 위한 예산이 마련돼 있고 사용하고 있나’라는 문항에 대해 “대부분 건설업계와 관련된 내용인 것 같다”며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식당에 안전모가 왜 필요하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다른 사업장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9명이 근무하는 중소형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C씨는 ‘작업 전 안전점검회의를 제대로 실시하고 있나’라는 질문을 두고 “위험한 도구를 사용하기 전에는 당연히 사용법을 알려 주고 안내도 하고 있지만, 이게 안전점검회의인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직원 8명을 둔 업체를 운영하는 D씨 역시 ‘비상상황에 대비해서 필요한 조치계획(매뉴얼) 등을 마련하고 조치계획에 따라 정기적으로 훈련을 실시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쓴웃음을 지었다. D씨는 “별도의 매뉴얼이 따로 있지는 않다”며 “이 정도 규모의 회사가 정기적으로 훈련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들 업주는 “큰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골목상권에도 중대재해법을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C씨는 “우리처럼 작은 가게들은 안전을 위한 추가 인력이나 예산을 투입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D씨는 “인원수를 기준으로 적용할 것이 아니라 업종별로 구별하는 것이 훨씬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기업들도 ‘아직 준비 중’

영세 자영업자들보다 덩치가 큰 소기업들 역시 중대재해법 준비가 덜 된 상황이다. 법 시행 이전인 지난해 12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1053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94%는 ‘법 적용을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이 중 87%가 ‘남은 기간 내 법에서 정한 의무사항을 준수하기 어렵다’고 답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도 상당수 소기업은 중대재해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총 조사에서 법 적용을 준비 중이라고 답한 기업들을 근로자 수 기준으로 분류하면 △10인 미만 89% △20인 미만 89% △30인 미만 85% △50인 미만 79%다. 법 의무 준수가 어려운 이유로는 △전문 인력이 없어서(41%) △의무 내용이 너무 많아서(23%) △예산 확보가 어려워서(19%) △의무 내용이 불명확해서(11%) 등을 꼽았다.

중대재해법 적용을 유예하는 법안 처리는 21대 국회에서 결국 무산됐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에는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된 중대재해법 적용을 유예하는 개정안이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기업계는 최근 50인 미만 기업의 중대재해법 적용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 가능성에 대한 검토 작업에 착수한 상황이다.


백준무·이예림·윤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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