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스포츠는 분위기나 흐름에 따라 기량 차이도 뒤엎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선수들의 덕목 중 가장 중요한 게 기량이긴 하지만, 그가 팀 분위기를 저해한다면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프로배구 올스타 브레이크 동안 흥국생명은 2년째 외국인 선수로 뛰던 옐레나 므라제노비치(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퇴출시켰다. 대신 데려온 선수가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좌완투수인 랜디 존슨의 딸 윌로우 존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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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히 놓고 말해서 선수 개인의 기량 자체는 옐레나가 한 수 위라는 평가다. 신장도 196cm의 옐레나가 191cm의 윌로우보다 더 크고, 힘도 더 좋다. 공격 테크닉 역시도 옐레나가 한 수 위다. 윌로우가 나은 부분이 있다면 아포짓 스파이커를 수행하기에 더 유리한 왼손잡이라는 것 정도다.
하지만 배구는 개인 운동이 아닌 팀 운동이다. 두 선수 중 누가 흥국생명의 경기력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느냐를 놓고 보면 윌로우가 한 수, 아니 두세 수는 위로 봐야할 것 같다.
윌로우 영입 후 흥국생명은 5라운드에서 도로공사와 GS칼텍스, 정관장을 상대로 모두 승리를 거뒀다. 9세트를 따내는 동안 내준 세트는 단 1개(정관장)에 불과할 정도로 흥국생명의 경기력은 옐레나와 함께 했던 4라운드 막판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런 상승세는 선두 경쟁 중인 현대건설을 만나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윌로우 영입으로 인한 팀 분위기 상승 효과를 톡톡히 보고있는 흥국생명이 현대건설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며 아직 1위 싸움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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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은 12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현대건설과의 맞대결에서 김연경(16점)과 레이나(11점), 윌로우(14점)의 삼각편대를 앞세워 세트 스코어 3-0(25-14 25-18 25-20) 완승을 거뒀다. 승점 3을 챙긴 흥국생명은 승점 59(22승6패)로 승점 62의 현대건설(21승7패)과의 승점 차를 3으로 줄였다. 한 때 9까지 벌어졌던 승점 차가 3까지 줄어들면서 흥국생명은 역전도 가능한 위치까지 올라서게 된 것이다.
흥국생명의 경기 플랜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경기였다. 현대건설은 지난 9일 GS칼텍스전 2세트에 어깨 부상으로 빠졌던 위파이(태국)가 이날도 뛰지 못했다. 이에 현대건설은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를 정지윤, 김주향으로 구성했다. 두 선수는 서브 리시브보다는 공격력이 돋보이는 아웃사이드 히터들. 흥국생명 서버들은 1세트부터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1세트에 정지윤은 5개의 서브 중 1개의 리시브만 세터에게 정확하게 연결했고, 김주향은 10개의 서브를 받아 3개를 연결하긴 했지만, 2개의 서브에이스를 허용했다. 서브의 대부분을 받아야 하는 두 선수의 합친 리시브효율이 10%대에 머물면서 현대건설은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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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흥국생명은 모든 게 원활하게 돌아갔다. 윌로우를 영입하긴 했어도 흥국생명 공격의 중심은 김연경과 레이나로 이어지는 아웃사이드 히터들이다. 게다가 윌로우가 영입된 이후 흥국생명을 상대하는 블로커들은 덮어놓고 김연경과 레이나만 견제할 수 없다. 이는 세 선수가 모두 공격에서 상대의 블로커들은 최소 0.5명은 떼놓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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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트를 너무나 맥없이 내준 현대건설은 2세트 들어 리시브 안정을 위해 김주향을 빼고 리시브 능력이 더 나은 고예림을 투입해봤지만, 고예림도 흥국생명 선수들의 엔드라인을 겨냥해 밀어때리는 듯한 서브에 리시브가 크게 흔들리며 2세트 리시브 효율이 20%에 불과했다. 반면 흥국생명은 1세트에 2득점으로 잠잠했던 윌로우가 2세트에는 6점으로 공격력을 되찾고, 김연경이 여전히 주포 역할을 톡톡히 해주면서 2세트도 손쉽게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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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트 들어 현대건설의 경기력이 한결 나아지면서 세트 중반까지 접전 양상으로 치러졌지만, 이날은 확실히 흥국생명의 경기력은 예전보다 나았고 현대건설은 평소보다 못했다. 18-16에서 레이나가 본인의 흔들린 리시브에 의한 오픈 공격을 직접 현대건설 코트에 내리 꽂았고, 이어 김연경의 서브득점까지 터져나오며 20-16까지 달아났다. 21-19에서 긴 랠리 속에서 김연경이 양효진의 블로킹을 피해 밀어넣기를 성공시킨 뒤 이주아의 서브득점이 터져나오며 23-19로 점수차를 벌렸다. 24-20에서 김연경의 마지막 퀵오픈이 상대 블로커를 맞고 코트밖으로 나가며 승부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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