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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삶”… ‘탈북-간호사-의사’로 장학금도 쾌척

입력 : 2024-02-09 12:00:00 수정 : 2024-02-09 10: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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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화면이 아닌 환자들의 눈을 마주 보며 사람에 최선을 다한다”

 

충북 제천시 한 병원 손모(59·여) 원장의 역경과 선한 영향력이 화제다.

 

9일 제천시에 따르면 손 원장은 북한을 떠나 십여년 전 한국에 입국해 하나원 적응 교육을 마치고 제천에 터를 잡았다.

 

제천이 ‘제2의 고향’인 셈이다.

 

손 원장은 “서울과 경기는 인기가 너무 많고 그나마 지도를 보니 제천이 서울하고 가깝더라고요”라며 제천에 터를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처음 한국에 왔을 때 40대 후반이었지만 모든 면에서 ‘신생아’ 수준이었다. 북에서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지냈다. 한국행은 순전히 의학과 세상에 대한 갈증으로 택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봐온 새로운 세상과 남한 의사들의 학문적 성취가 궁금했다”고 덧붙였다.

 

손OO 원장. 제천시 제공

◆이민수용소에서 돌칼로 살해위협을 받다

 

제천 정착은 올해로 12년째다.

 

북한 의사 학위는 국가시험을 다시 치러야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될 수 있다.

 

당시 북한은 진단명을 라틴어로 표기했다.

 

이에 의학 용어나 제약회사 약 이름 등을 익히기는 쉽지 않다.

 

그는 대원대학교 간호학과에 입학해 간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하나원 졸업 시 “대한민국 의사는 상위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 5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의사 자격 취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진로상담사의 조언을 들었기 때문이다.

 

손 원장은 “버스를 타고 오가며 20대들 틈바구니에서 악착같이 한달을 버텼다”고 했다.

 

그러다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며 삶의 고통이 밀려왔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너무 바빠서 자판기를 두드리면서 환자 얼굴도 못 보고 진료기록부만 작성하는 의료진의 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특히 입원 기간 전화는커녕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을 때 고립감과 외로움이 속 깊이 끓어올랐다.

 

그는 “이민수용소에서 한 탈북자가 ‘우리와 출신이 다른 세계에서 살던 엘리트’라 비난하며 돌칼로 살해위협을 했을 때도 이런 기분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은 그 친구와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경야독’…목숨 걸고 한국행 택한 이유를 찾다

 

병원에 있던 잡지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잡지엔 한 북한이탈주민(새터민) 의사가 겪은 역경과 극복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손 원장은 “온몸에 전율이 흐르며 그제야 비로소 목숨 걸고 한국행을 택한 이유가 생각났다”고 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날 손 원장은 간호대학에 자퇴 원서를 내고 의사 국가시험 준비에 매진했다.

 

기초생활수급비로 나오는 월 40만원 정도로 국가시험 준비를 위한 책값조차 부담하기에 어려웠다.

 

낮에는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국가시험 준비를 했다.

 

1년 반을 ‘주경야독’하며 단번에 국가시험에 통과했다.

 

그 후 제천에서 남편을 만나 가정도 꾸렸다.

 

의사 면허증을 받은 다음 날 바로 제천의 한 병원에 취직해 2년간 의사로 일하다 2017년 병원을 개원했다.

 

남편을 비롯한 시부모도 그의 개원을 말렸다.

 

그는 자신의 의사 면허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병원 문을 열었다.

 

손 원장은 “개원 후 3~4개월은 대출을 받아 직원들 급여를 줬고 약국 입점이 안 돼 직원이 자전거를 타고 200m 떨어진 약국까지 가서 처방 약을 받아다 환자들에게 줬다”며 “학연도 지연도 아무런 인맥도 없으니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는데 너무 순진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상황은 그를 더욱 분발케 했다.

 

좌절감이 밀려올 때면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학회나 세미나를 찾아다녔다.

 

주말마다 서울로 지방을 가리지 않고 학회가 열리는 곳이면 달려갔다.

 

미용학회와 비만전문학회도 빼먹지 않았다.

 

그는 “입원했을 때 차트나 컴퓨터만 보는 의사가 되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며 “지금도 그 다짐은 진료 시 첫 원칙으로 직원들 사이에선 ‘냉정한 원장님’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19살에 세상 뜬 아들 생각해 장학금 기부

 

손 원장은 최근 병원 개원 7주년을 맞아 조촐한 축하 행사도 열었다.

 

현재 5명의 직원이 그와 함께 환자들을 돌본다.

 

그는 2020년 200만원, 지난해 300만원, 올해 300만원을 제천시 인재육성재단에 기부했다.

 

손 원장은 “북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19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며 “가슴에 묻었다고 생각하다가도 불현듯 떠올라 소소하게라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되었고 앞으로 꾸준히 기부를 이어가고 싶다”고 설명했다.

 

의사인 손 원장은 건강 관리도 당부했다.

 

손 원장은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며 “당뇨, 혈압수치가 높으면 반드시 의사와 상담 후 약을 꼭 챙겨 먹으라”고 했다.

 

또 “당뇨와 고혈압 합병증은 무서운 삶의 질 하락을 가져오고 비만은 만병의 씨앗으로 100세 시대는 현재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천=윤교근 기자 sege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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