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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운전 무서운 택시기사들… 새해에도 ‘폭언·만취 승객’ 여전

입력 : 2024-01-18 19:00:00 수정 : 2024-01-19 10:5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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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불성 손님 요금시비 등 행패
경찰 불러도 처벌 못해 속앓이만

기사 절반 3개월에 한 번씩 봉변
64%, 억울해도 그냥 참고 넘어가

“승차거부 우려 안 태우기 힘들어
직업이 이러니 어쩔 수 없어” 한숨

“요즘 일을 안 나오고 싶을 정도예요.”

5년 전 퇴직한 뒤로 ‘핸들밥’을 먹고 있다는 택시기사 채건석(65)씨는 며칠 전 취객을 태웠다가 봉변을 당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강동구 천호동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손님이 채씨가 요금을 더 받으려고 일부러 돌아서 간다며 행패를 부린 것이다. 채씨는 “내비게이션 따라가는 거라고 설명해도 욕을 멈추지 않았다”며 “도저히 참기 힘들어 파출소로 데려갔더니 경찰은 참으라는 식으로 말할 뿐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파출소까지 나온 요금은 받지 못했다. 채씨는 “그 요금 받으려면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어떤 기사가 그렇게까지 할 여력이 있겠냐”고 했다.

서울역 택시승강장의 모습. 뉴시스

술에 취한 승객에게 봉변을 당하는 택시기사들의 수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송년회와 신년회 등으로 회식과 모임이 몰리는 연말연시에 택시기사들의 한숨은 더 깊어진다. 손님 중에 취객이 많은데, 행패를 부려도 기사를 폭행하지 않는 한 처벌이 어렵고 폭언을 듣고 경찰을 불러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현실 때문이다.

18일 취재진이 만난 택시기사들은 만취해 난동을 부리는 손님을 만나도 ‘속수무책’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37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박원섭 서울개인택시평의회장은 “택시기사들은 ‘내 직업이 이러니 어쩔 수 없구나’하고 소주 한 잔 먹고 말 수밖에 없다”고 한탄했다. 박 회장은 “술집도 만취한 사람은 안 받는 것처럼 택시기사도 취객을 기피하는 건 당연하지만, 안 태우면 자칫 승차거부로 신고당해 경위서를 써야 하는 처지”라고 했다.

취객을 피하려고 야간 운행을 기피하는 택시기사들도 적잖다. 이날 영등포구 한 LPG 충전소에서 만난 택시기사 박모(66)씨는 “취객 상대가 지긋지긋해서 밤에 운행을 안 한다”며 “38년 운행을 하며 차에 소변을 보겠다는 손님도 봤다”며 손사래를 쳤다. 박씨는 “‘저녁에는 넥타이 맨 사람만 태워라’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택시기사들의 목소리도 높았다. 4년 전부터 택시를 몰고 있다는 윤모(56)씨는 “최근 손님한테 폭언을 듣고도 시비 붙을까 봐 웃으며 ‘네, 네’ 답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 손님을 내려주고 차에서 내려 줄담배를 피웠다”고 말했다. 윤씨는 “손님이랑 괜히 싸우면 운행 정지를 당할 수도 있어 기사가 할 수 있는 게 사실상 없는 셈”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택시기사들이 배가 불러 야간 운행을 안 한다고 하는데 이런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보다 기사들을 비난하는 방향으로 여론이 흘러가 속상하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택시노동자 노동환경 실태 및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조사에 응한 택시기사 518명의 절반 가까이(48.2%)가 3개월에 최소 1회 이상 승객으로부터 폭언·욕설·협박을 경험한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64.4%가 승객으로부터 폭언·욕설·협박을 듣고도 참고 넘어간다고 답했다. 고소 등 법적으로 대응했다고 응답한 이는 0.8%에 불과했다.

당시 연구를 진행한 장진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원은 “택시기사들에 대한 정신치료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 번 취객의 행패를 경험한 기사들은 심리적 충격뿐만 아니라 이후 운행에서도 트라우마를 경험한다는 설명이다. 장 연구원은 “결국에는 기사들이 취객에 대한 승차거부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보호벽을 세우고 폭언·욕설에 대한 처벌 법령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후적인 조처도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윤준호·안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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