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단독] 형기대 만든다고 일선서 차량징발…인원 차출로 수사력 약화 우려도

입력 : 2024-01-08 17:51:21 수정 : 2024-01-09 19:32:5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16개 시도청 중 4개청 과반 징발
경기남부청 66%… 서울·대전청 順

수사관들 車 없어 자차까지 이용
‘아랫돌 빼내서 윗돌 메꾸기’ 비판

인력도 빼내 수사역량 약화 우려
경찰청 “예산 제한 어쩔 수 없어”
“수사관 50명이 승합차 2대를 쓰고 있었는데 1대를 징발한다고 합니다.”

 

서울 한 일선 경찰서에 근무하는 A경사는 업무에 쓸 차량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형사기동대(형기대)가 부활하면서 각 시·도경찰청이 차량을 징발했는데, 안 그래도 50명가량 있는 부서에 2대뿐이던 승합차가 1대로 줄지도 모른다고 하소연했다. A경사는 “차가 턱없이 부족해 자차까지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업무망에 운행 거리와 연비 등 정보를 입력하면 기름값이나 통행료를 돌려받을 수 있지만, 번거로워 그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형사기동대 출동 차량. 연합뉴스

경찰청이 잇단 이상 동기 범죄 발생 이후 범죄 예방 목적으로 다시 꾸린 1300여명 규모의 16개 권역별 형기대가 다가오는 정기인사에 맞춰 출범할 예정이다. 이에 형기대에서 운용할 차량을 징발했는데, 일선 경찰서가 이미 차량이 부족한 상황이었던 만큼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형사과 등 수사 부서에서 형기대 인원을 차출하며 수사력 약화와 역할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8일 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경찰은 형기대 전체 차량 255대 가운데 105대(41.2%)를 일선 경찰서에서 확보했다. 형기대를 운영하는 16개 시도청에서 4개 청이 절반 이상의 차량을 일선 경찰서에서 가져왔다. 서울청은 40대 중 25대(62.5%), 대전·울산·강원청은 12대 중 7대(58.3%)를 징발했다.

 

경찰은 제한된 예산 안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인원이 줄어드는 팀 위주로 차량을 확보했다”면서도 “원래도 차가 많이 부족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대한 새로 차를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은 하고 있으나 예산이 걸려 있는 문제다 보니 향후 상황을 봐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다른 경찰청 관계자는 취재 이후 “오는 2월 중 형기대로 차출된 이후 차량이 부족해진 일선 경찰서 부서에는 다른 차를 대체 보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체 보급이 가능한 물량이 있는데 왜 처음부터 일선 경찰서에서 징발했는지에 대해서는 “형기대의 특성상 주행거리 등 차량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차량을 우선 배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어 “형사과처럼 외근이 많은 부서의 경우 팀당 1대씩 배정하고 있다”며 “수사과처럼 내근이 많은 부서는 배정된 차량이 적을 순 있지만 관서 내에 이용할 수 있는 공용차량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용차량도 이용에 부서 간 경쟁이 있거나 업무에 적절하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경사는 “호송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증거를 남기기 위해 블랙박스가 장착된 차량이 필요한데 블랙박스는커녕 경광등과 경찰 마크도 붙지 않은 일반 화물용 승합차만 남아 있거나 이조차도 없는 경우가 많다”며 “정말 급할 때는 공용차가 아닌 다른 부서 차량을 어렵게 빌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차량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학부 교수는 “현장으로 신속하게 출동해야 하는 경찰에게 기동성은 필수적인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며 “증거를 수집하거나 현장 조처는 시간을 다투는 일인데 차가 없어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 시트콤에나 나올 장면이 연출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한편 형기대가 주로 형사과 등 수사 인력으로 채워지는 만큼 경찰의 수사 역량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 지역 한 경찰직장협의회 관계자는 “형기대 창설 취지가 범죄 예방인데 이는 형사의 기능이 애초에 아니다”라며 “예방을 위해선 제복을 입고 가시적으로 활동해야 하지만 형사는 기본적으로 사복으로 근무한다”고 말했다. 또 “조직을 개편할 땐 장비와 인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시간을 두고 준비해야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행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며 “범죄에 대응하는 건 좋지만 사건이 터질 때마다 조직 안정성을 해치는 일을 그만하길 바란다”고 비판했다.

 

염 교수는 “인지·기획 수사가 약화할 수밖에 없지만 이미 만들어진 만큼 형기대를 잘 활용하는 일이 과제”라고 당부했다. 그는 “형기대의 활용성을 높이려면 범죄 예방보다 범죄 즉각 대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강력 범죄 발생 시 출동·검거에 대응하도록 역할을 부여해야 실효성 있는 조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 의원은 “지난해 경찰청에서 형기대 설치를 예고했을 때부터 일선 경찰서의 치안력 약화 우려가 있었다”면서 “결국 충분한 준비 없이 진행돼 국민 안전 확보라는 당초 경찰 목표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여자)이이들 미연 '순백의 여신'
  • (여자)이이들 미연 '순백의 여신'
  • 전소니 '따뜻한 미소'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
  • 수지 '하트 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