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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손사태 대해부] 男 이용자 등 돌릴라 ‘백래시’ 무차별 포용… 놀이가 된 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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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1-06 05:00:00 수정 : 2024-01-05 19: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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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충수’ 된 이용자 친화적 운영

남성이용자 대다수… 문화산업서 유일
주요 고객 男 반발 매출 감소로 직결
성우 교체부터 집게손가락 검열까지
反페미니즘 악성 민원 ‘묻지마 수용’

‘여직원 많으면 회사 이미지 부정적’
업계, 여성노동자 노동권까지 위협
“소수의견 좇다 다양성 저버린다면
게임업계 국제 경쟁력 잃게 될 것”

“남성 이용자들은 아바타를 좀 덜 벗기면 ‘PC(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묻었다’고 얘기하면서 ‘디렉터 사상 검증을 하고 싶으면 다음 분기 업데이트 때 수영복이 얼마나 야하게 나오는지 보면 된다’고 이야기한다.”

 

한 게임회사에서 근무하는 A씨는 5일 게임 이용자들의 악성 민원이 극에 달했다며 이 같은 예시를 들었다.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백래시(반발)를 기업이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백래시가 일종의 놀이가 됐다는 설명이다.

 

지난 2023년 11월 28일 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들과 민주노총이 경기 성남시 판교 넥슨코리아 사옥 앞에서 항의 집회를 하는 가운데 게임업계를 향한 요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제공

게임 업계의 페미니즘 사상 검증이 다시 불붙고 있다. 지난 11월23일 넥슨이 공개한 게임 홍보 영상에 남성 혐오를 상징하는 집게 손가락이 등장했다며 이용자들이 항의에 나선 게 발단이었다. 본사 디렉터는 유튜브로 사과했고, 넥슨 직원들에 더해 다른 게임회사들도 자발적으로 집게 손을 찾아 없애는 데 밤낮을 바쳤다. 해당 작업물을 그린 작가가 40대 남성으로 확인됐지만 이용자들도 회사도 ‘과도한 대응’과 ‘과도한 항의’를 바로잡지 않았다. 비이성적인 민원에 속수무책으로 기업들이 끌려다닌다는 사실이 또 한 번 증명된 사례였다.

 

◆이용자 친화적 운영 독 됐나

 

업계에서는 2016년 7월 ‘넥슨 성우 교체 사건’이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보고 있다. 당시 넥슨의 게임 ‘클로저스’의 캐릭터를 맡은 성우 김자연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녀들은 왕자가 필요 없다(Girls Do Not Need A PRINCE)’가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올렸다가 이용자들의 공격을 받았고, 넥슨은 김씨의 음성을 교체했다. 이용자들의 효능감을 충족해준 셈이다. 

 

A씨는 “대다수 이용자가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수용한 사례여서 사회적으로는 눈총을 받았지만, 넥슨 내부에서는 성우 교체 뒤 게임 지표가 좋아졌기 때문에 이 판단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넥슨의 판단은 자충수로 작용했다. 

 

비단 페미니즘 이슈 민원만 게임 업계가 수용해온 것은 아니다. 이용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관행은 최근 몇 년 사이 더 공고해졌고, 그 영향이 고스란히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21년이 그 분기점으로 꼽힌다. 2021년 1월 당시 넷마블의 모바일 게임이 현금 보상 이벤트를 긴급 종료하자 트럭 시위가 본격화했다. 그해 이른바 3N(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은 ‘확률형 아이템 논란(게임사들이 뽑기 아이템 확률을 조작했다는 의혹)’으로 트럭 시위를 겪었다. 

 

이용자들의 반발이 곧바로 매출 급감으로 이어졌다면, 적극적인 소통은 성공 요인으로 꼽혔다. 그 중심에는 게임 기획과 개발, 운영 등을 총괄하는 ‘디렉터’가 있다. 디렉터 중심 소통 문화는 스마일게이트의 금강선 최고창의력책임자(COO)가 시초로 알려져 있다. 금 COO는 이용자들과 적극적인 소통으로 업계가 확률형 아이템으로 홍역을 앓던 2021년 로스트아크를 흥행시켰다.

 

넥슨 집게 손 사태에서 디렉터가 직접 유튜브에 등장해 고개를 숙인 이유도 이 같은 맥락의 연장선이다. 김창섭 메이플스토리 디렉터는 지난달 28에 2차 공지를 올려 “모든 외주업체 선정을 원점부터 재검토하고, 작업물의 검수 시스템을 정비할 것”이라며 “현재까지 약 100여 개 이미지에 대한 수정을 완료했다”고 강조했다. 

 

◆설 자리 좁아지는 여성 직원들

 

문화 산업에서 게임은 거의 유일하게 남성 소비자가 여성 소비자보다 많은 시장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2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 인구 중 PC게임을 하는 비율은 49.7%, 여성은 30.6%다. ‘고래 유저’(과금을 많이 한 유저)의 성비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매출을 좌우하는 이용자 다수가 남성일 것으로 추정한다.

 

A씨는 “하물며 GS25 같은 남녀 모두가 소비자인 기업에서도 단호하게 대응하는데 남성 이용자가 대다수인 업계에서 PC함을 추구한답시고 이용자들 말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게임 업계 내부 논리를 설명했다.

 

기업들이 여성 이용자를 ‘없는 존재’ 취급하면서 그 안에서 일하는 여성 근로자들의 노동권도 박탈당하고 있다. 여성 직원이 업무에서 직간접적으로 배제되는 경향이 대표적이다. 게임 업계 종사자인 B씨는 “유튜브에 콘텐츠 담당자들이 출연하는 일이 잦은데 ‘여자 직원이 회사에 많다는 게 영상에 노출되면 부정적일 것 같으니 남자 직원 중심으로 나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한다”고 했다.

 

분노와 무력감도 커지고 있다. 넥슨 사태 영향으로 일제히 ‘집게 손을 찾아내라’는 지시가 내려지면서다. 업계 종사자인 C씨는 “손가락 검열 지시 내려왔을 때 어떻게 다 찾냐고 반발하니까, 남자 직원들이 예시 이미지를 ‘이런 손가락만 잡으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그는 “집게 손 사태 뒤 여자 직원들은 대부분 화나 있는 상태”라며 “그런데 불만을 드러낸다고 해도 회사가 뭘 해줄 거라는 기대는 전혀 안 되고, 업계를 떠나야겠다는 생각만 든다”고 했다. 

 

성우, 일러스트레이터 등 외주업체 직원들을 대상을 한 사상 검증도 심해졌다. C씨는 “최근 성우로 참여할 외주업체를 물색하는데 상사로부터 해당 성우의 SNS를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아다”며 “2016년 당시 일이 있었는데도 한 발도 나아지지 않았고, 당연히 기업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증언했다. 

 

넥슨 측은 “우리 사회의 긍정적 가치를 훼손하는 모든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는 두루뭉술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한국여성민우회가 페미니즘 사상 검증에 항의하는 시민 의견 9429개와 2만5511명의 서명을 전달한 데 관해서는 “회사 입장을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게임 업계가 다양성을 버리면 결국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김민성 한국게임소비자협회장은 “소수 남성 이용자의 목소리만 수용하면 그럭저럭 돈이야 벌겠지만, 국제적인 인정은 받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2018년 ‘한국, 남자’를 출간한 사회학자 최태섭 작가도 게임 업계의 문제 해결 방식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자본주의 자체가 소비자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고 넥슨이 서비스하는 게임은 대부분 남성 중심”이라며 “기업은 기본적으로 민원이 들어오면 납작 엎드리고 문제를 무마하는 고객서비스 방식으로 해결하려 한다”고 꼬집었다.

 

최 작가는 상대적으로 문화 다양성을 중시하고 높은 과금을 선호하지 않는 북미나 유럽시장으로 국내 게임 산업이 확장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며 “국내 게임 업계가 문화 다양성이나 혐오문제 리터러시(문해력)에 약한 편이고 혐오표현에 전혀 기준이 없어 리스크 관리 시 문제가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지민·박유빈·정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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