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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마두로, 장기집권 위해 영토 도발… 무력충돌 우려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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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1-07 10:00:00 수정 : 2024-01-07 09:5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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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選 노리고 이웃국가와 갈등 부추겨

베네수엘라 경제파탄의 장본인

2013년 대통령 당선 후 경제난 심화
자원 국유화·과도한 복지정책 부메랑
재선때 부정선거로 美 제재까지 받아
‘초인플레’로 경제 사실상 회복 불능

‘석유 매장’ 가이아나 땅에 눈독

가이아나의 에세키바 인근 해상서
대규모 유전 발견 후 영토 분쟁 심화
실효적 지배권 주장 국민투표도 실시
지지층 결집 위해 ‘외부의 적’ 만들어

서방 “가이아나 지지”… 긴장 고조

英, 군함 파견 등 외교·군사적지지 표명
美도 가이아나 방위군과 합동훈련 추진
마두로, 수천명 참가 군사훈련으로 ‘맞불’
‘무력사용 한계’ 전망 속 가능성 배제못해

베네수엘라 서부 메리다주 푸에블로야노의 농부 이스네트 안토니오 로드리게스 맘벨은 지난해 6월 당근을 내다 버렸다가 공정가격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그는 “화물차에 넣을 기름이 부족해 유통업자에게 보내지 못하게 됐다”며 “썩어나가는 것을 볼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폐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난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받지만 3선에 도전하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카라카스=AFP연합뉴스

베네수엘라는 원유 매장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산유국이지만, 역설적으로 국민은 애써 가꾼 작물마저 연료 부족으로 버릴 정도의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다.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 앞에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은 베네수엘라에서 익숙한 풍경이 됐다.

이런 베네수엘라 경제 파탄의 장본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오는 10월로 예상되는 선거에서 3선을 노리고 있다. 경제난으로 3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지자 그는 이웃 국가와의 갈등을 부추겨 지지층을 결집하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접경국 가이아나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석유 매장지 ‘과야나 에세키바(베네수엘라명 에세퀴보)’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국민투표를 시행하고 석유 탐사 등을 추진하는 조치였다.

가이아나는 반발했고,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은 가이아나를 지지하고 나섰다. 영국은 군함까지 보내 베네수엘라와 군사 충돌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최악의 경제난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는 석유 수출로 1970년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남미에서 가장 높았지만 국민의 실질적인 삶은 피폐했다. 부정부패한 정치권과 이와 결탁한 기득권층이 돈을 빼돌려 외국에 숨기는 등 석유로 돈을 벌었지만 국민에겐 다른 세상 얘기였다. 1980년대 유가가 폭락하자 민생파탄과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1990년대 초반 베네수엘라 국민의 절반 이상이 겨우 하루 한 끼로 때울 정도로 가난했다.

빈곤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1998년 들어선 우고 차베스 정권은 기득권의 부정부패 척결과 복지 확대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2000년대 들어 유가가 오르자 큰돈을 벌어들인 차베스 정권은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다양한 복지정책을 폈고 이를 기반으로 4연임을 이어갔다. 하지만 석유 수출에만 의존해 다른 산업은 발전하지 못한 기형적 경제 구조로 2000년대 후반 유가가 급락하자 다시 경제는 파국에 직면했다.

2013년 집권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유가 폭락에도 이전 정권과 같이 자원 국유화와 과도한 복지정책 등을 밀어붙였고 경제는 더욱 악화했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국영 석유회사의 부채를 막아주고, 무상복지 정책 추진을 위해 무분별하게 화폐를 찍어냈다. 여기에 마두로 대통령의 2018년 재선 당시 부정선거로 미국의 금융 및 경제 제재 조치가 더해졌다. 이는 2018년 6만5370%, 2019년 1만9910%라는 믿기지 않는 ‘초(超)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으로 이어졌고, 베네수엘라 경제는 사실상 회복 불능상태가 됐다. 현재 베네수엘라 국민 4명 중 3명의 소득은 세계은행 극빈층 기준인 하루 1.9달러(약 2468원)에도 못 미친다. 770만명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난민으로 떠돈다.

◆마두로 가이아나 겨냥한 이유는

마두로 대통령은 올해 선거에서 3선을 노린다. 경제난을 자초했다는 비판에 3선이 위협받자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들었다. 베네수엘라는 접경국 가이아나의 과야나 에세키바로 불리는 에세키바강 서쪽 15만9500㎢ 영토와 그 유역에 대해 “역사적으로 우리 땅이었다”며 실효적 지배권을 주장했다.

가이아나의 총 국토 면적(21만㎢)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이 지역은 금과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자원이 풍부한 정글로 가이아나 전체 인구(80만명) 중 12만5000여명이 살고 있다. 2015년 인근 해상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됐고 이때부터 베네수엘라는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당시 탐사를 진행한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은 석유 매장량을 110억 배럴 이상으로 추산했다. 사탕수수와 쌀 등 농업에 의존해 연 3∼4%대였던 가이아나의 경제 성장률은 석유를 시추한 2019년 이후 20∼60%대로 뛰어올랐다. 가이아나 1인당 GDP 역시 유전이 발견된 2015년 1만1000달러에서 2023년에는 6만달러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땅은 국제법상 가이아나 영토다. 189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중재 판정 결과다. 베네수엘라는 1966년 영국에서 독립한 가이아나를 상대로 “자국과 영국이 1966년 맺은 제네바 합의를 통해 가이아나와의 영토 분쟁에 대한 원만한 해결을 약속한 만큼 1899년 중재는 무효”라며 “당사국 간 협상으로 이 사안을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해 4월 “이 문제의 관할 권한은 ICJ에 있다”며 당사국 협의가 아닌 국제사법재판 절차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베네수엘라는 이런 국제 질서를 무시하고 돌연 지난달 3일 국민투표를 했다. 질의 내용은 ‘1899년 중재 판정 거부’, ‘1966년 제네바 협약 지지’, ‘영토 획정 관련 가이아나 주장 거부’, ‘ICJ 재판 관할권 인정 반대’, ‘해당 지역에 새로운 주 신설 및 지역 주민에게 베네수엘라 시민권 부여’ 등이었다. 마두로정부는 ‘다섯 번의 찬성’(5 veces Si)이라는 이름으로 노골적인 투표 독려 캠페인을 벌이고 모의 국민투표까지 시행했다. 투표자의 95%가 정부의 영유권 주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결과는 나왔지만 마두로정부는 정확한 투표율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는 ‘에세퀴보주(州)’를 신설해 인구조사와 석유 탐사를 시행하고, 해당 지역 해상에서 2019년부터 석유를 생산하고 있는 엑손모빌 등 기업에 3개월 이내에 떠날 것을 통보하는 등 후속조치를 취했다. 가이아나와 국경 지대에 군 병력도 증강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우리 땅을 수호하는 역사적이면서도 전례 없는 선거였다”며 “석유 탐사를 위해 국영 석유 기업 PDVSA와 국영 철강회사 CVG에 관련 부서를 만들고, 관련 면허를 즉시 발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두로의 도발, 무력 충돌로 이어질까

가이아나도 베네수엘라의 도발에 유엔 등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며 대응에 나섰다. 가이아나는 현역 병력과 예비군이 4000여명에 불과하다. 베네수엘라의 군병력은 35만여명이고, 러시아산 수호이 전투기와 탱크 등을 보유하고 있다.

가이아나를 지지하는 미국과 영국 등 서방은 석유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군함 등을 파견해 베네수엘라와의 무력 충돌 가능성도 제기된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이 “해당 지역 내 무력 충돌이나 갈등이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고 가이아나 주권을 흔들림 없이 지지한다”고 강조한 뒤 미군과 가이아나 방위군의 합동 비행훈련 시행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대통령 선거를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른다는 전제로 마두로정부에 대한 제재를 지난해 10월 완화한 바 있는데, 다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영국은 과거 식민지였던 가이아나에 군함을 보내는 등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영국 경비함 HMS 트렌트는 지난달 29일 가이아나에 도착해 현지군과 방어훈련을 실시했다. BBC 방송은 군함 파견에 대해 “옛 영국 식민지인 가이아나에 대한 외교적, 군사적 지지 입장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영국이 군함을 보낸 데 맞서 5600여명이 참여하는 군사훈련을 지시했고, 방송은 전투기, 군함, 경비정 등이 참여하는 군사훈련을 중계했다.

베네수엘라의 무력 사용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82년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이 인근의 영국령 포클랜드 제도를 침공했다가 영국군에 패한 뒤 붕괴된 바 있어 자칫 무력 도발이 정권 종말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두로 대통령과 모하메드 이르판 알리 가이아나 대통령은 긴장 완화를 위해 지난달 14일 만나 입장차를 확인했지만 무력으로 분쟁을 해결하진 않겠다고 합의했다.

베네수엘라의 국제위기그룹 필 건슨 수석 분석가는 파이낸셜타임스에 “마두로가 에세키바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지만 이를 수행할 명확한 방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다만 마두로가 어느 시점에서 국경의 긴장을 고조시켜 가이아나 군대와 소규모 전투를 유발할 경우 상황이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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