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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과 폭염 때 기자들이 찾는 곳이 있다. 쪽방촌이다. 열악한 주거 환경을 보여 주는 스케치 기사를 연례행사처럼 쓴다. 주로 선배의 취재 지시로 현장에 가는 수습기자들은 주민 멘트 하나라도 더 받아 보려고 골목을 계속 서성인다. 같은 처지의 수습기자들은 서로를 보며 안쓰러워한다. 기자도 올해 설 연휴를 앞둔 한겨울에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을, 아지랑이가 피는 한여름에는 영등포 쪽방촌을 취재했다.

뻔한 쪽방촌 스케치 기사가 계속 보도될 수 있는 건 현실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났던 60대 홍모씨는 일주일 동안 자기를 찾아온 기자 명함을 보여 줬다. 얼핏 봐도 서른장은 돼 보였다. 그는 “인터뷰해서 기사가 나갔다고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는커녕 10원 한 푼 주는 사람 없었다”며 “대학교수 같은 사람들은 인터뷰하면 방송사가 사례금 준다던데, 여기 주민 가운데 사례금 받아 본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캔커피를 하나 사 갔지만 이마저도 도움이 안 됐다. 그는 당뇨가 있어 단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고 했다. 블랙커피만 마신다고 했다.

윤준호 사회부 기자

홍씨는 기자들이 지겹도록 찾아와, 자신의 집 이곳저곳을 촬영하고 떠난다고 했다. 그가 힘들었던 건 기자들이 떠나고 쪽방에 혼자 남겨진 순간이었을 것이다. 유튜브를 보면서 외로움을 달랜다는 홍씨는 ‘트롯신동’ 김태연의 ‘열두줄’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스마트폰으로 구슬픈 노래를 들려주며 명절이 다가와 헛헛하다고 말하던 그는 전에 찾아온 기자들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했다.

쪽방촌 주민들은 언론에 소비될 뿐이었다. 쪽방촌의 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여기에 언론의 공이 있는 것도 맞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기사에서 연민의 대상이자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죄책감에 연락처를 받은 쪽방촌 주민 두 명에게 몇 번 밥과 술을 샀다. 술잔을 비우니 그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래도 찜찜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내가 받은 월급으로 그들의 배를 채워 줄 순 있지만 결국 내가 쓰는 기사가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올해 추석을 앞두고는 우체국 집배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보도한 적 있다. ‘단독’ 문패를 달아서 두 차례 보도했다. 우정사업본부에서 연락이 왔고 이만하면 무언가 하나라도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사가 나가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집배원들이 국회 앞에 차린 농성 천막은 사라지지 않았다. 국회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열심히 취재하고 고민해서 썼던 기사가 무용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지난주 천막을 다시 찾았다. 노조위원장은 믹스 커피를 건네며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싸움의 국면은 바뀌어 있었고 기사로 다룰 수 있는 새로운 문제들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기사의 첫 문장이 그려졌다. 또 기사를 쓰겠다고 했다. 그가 고맙다고 했다. 같이 술 한잔한 것도 아니지만 천막을 나오면서 죄책감이 덜어졌다. 기사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또다시 혹한이 다가오고 있다. 쪽방촌 주민들은 여전히 가난하고 외롭고 춥다. 기사가 나간 뒤에도 다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윤준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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