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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으로 담아낸 일상… 보기만 해도 흐뭇한 상상

입력 : 2023-12-21 20:09:59 수정 : 2023-12-21 20: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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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브로피 기획전 ‘인생은 아름다워’

할인 플래카드 걸린 판매대 몰린 사람들
뒷모습이지만 표정 느껴져 미소 지어져
칵테일바에 나란히 늘어선 중년들 보며
고된 일과 뒤 누리는 여유 ‘행복감’ 생겨
“제 작품 보며 웃는 사람 모습 보는게 좋아”

비집고 들어갈 만한 틈이라곤 한 치도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우르르 몰려든 ‘아줌마’들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느라 무척 분주하다. 판매대를 몽땅 가려버린 이들의 뒷모습 위로 ‘SALE’(세일, 할인판매)이라 적힌 플래카드가 익살스레 걸려 있다. 표정을 볼 수 없지만 재빨리 낚아채는 장면들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온다.

‘날개 돋친 듯이’

뚱뚱한 배불뚝이 ‘아저씨’ 여럿이 칵테일바 프런트를 의지해 일렬로 늘어선 채 제법 느긋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하루 일을 끝내고 귀가하는 길에 들러 누리는 여유일 것이다. 이 또한 뒷모습을 그렸지만 관람객들은 어렵지 않게 ‘행복’을 건져 올릴 수 있다.

 

아일랜드 출신 작가 데스 브로피의 작품 ‘날개 돋친 듯이’와 ‘행복한 칵테일’이다.

그의 그림 속 사람들은 옷 잘 입는 귀부인이거나 힘 있는 고위관리가 아니다. 어제도 만나고 오늘도 보았을 우리 이웃들이다. 때론 억척스럽게 일상을 이어가지만 부모 잘 모시고 애 잘 키우며 살아온 삶의 베테랑들이다. 흥얼대는 콧노래와 너털웃음, 정이 묻어나는 덕담, 힘찬 걸음걸이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행복한 칵테일’

데스 브로피는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불과 열여섯 나이에 영국 왕립공군에 입대한 그는 12년간 아프리카 중·북부, 지중해, 동남아시아, 인도양의 몰디브 등 세계 여러 곳에 머물러 보았다. 다양한 문화와의 소통 경험이 그가 사람들의 일상을 따뜻한 눈으로 유쾌하게 그려내는 데 자양분 구실을 해온 것이다.

‘오랜 친구’

노랑 파랑 초록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걷는 여인들(‘집으로 가는 길’), 왈츠를 추듯 걸어가는 중년의 세 여인(‘춤추는 크리스마스’), 까만 우산을 쓰고 의자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남자와 여자. 함께 있는 강아지는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있을까?(‘세 친구’)

‘비오는 날의 데이트’

경찰관 둘이 자전거로 거리를 질주한다. 범인을 잡으러 가는 모습이 아니라 기쁜 소식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전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마을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 순찰 경찰관들마저 저토록 신이 나 있으니.(‘우리가 지킨다!’)

'음~이 맛이야!'

음식의 간을 보는 노익장 요리사 두 사람도 흐뭇한 얼굴이다.(‘음∼이 맛이야!’) 이들은 오래 쌓은 귀한 경험을 살려 일하고, 또 유쾌하게 쉬기도 한다. 카페 앞에서 와인을 마신 뒤 의자에 기댄 채 낮잠을 자는 노부부(‘꿀잠’)도 보인다.

 

무슨 의미가 담겼는지 캐낼 필요가 없다. 그냥 눈으로 스윽 보면서 즐기면 된다. 삶에서 즐거움보다 더 나은 게 있으랴. 그의 그림 속 주인공들은 노년의 무력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생동감에 여유와 미소가 가득하다.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은 당신과 함께 있는 바로 지금’이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웃음을 잃어가는 사람들, 경쟁에 지쳐 메말라가는 사람들에게 다시금 일상의 즐거움과 사랑의 순간을 포착해 돌려준다.

‘세 친구’

“제 작품을 사 간 사람 중에는 유난히 의사가 많아요. 병원 대기실에 걸어두면 아픈 환자들이 기분도 좋아지고, 치료 전 불안감도 해소된다는 거예요. 저는 제 작품을 보면서 웃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아요. 제 전시장에선, 춤추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쁨을,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가는 배를 볼 때는 에너지를 느끼면 좋겠어요. 딱 두 단어, 기쁨과 에너지! 그게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전부예요.”

'할아버지와 손녀'

‘인생은 아름다워’란 주제를 내건, 데스 브로피 기획전이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150 흰물결갤러리에서 내년 1월31일까지 열린다. ‘비오는 날의 데이트’ ‘소스 비결이 뭐요?’ ‘바람의 인사’ ‘공을 찾아라’ 등 웃음을 전하는 57개 작품이 관객을 반긴다. 연말연시, 편안하고 정감 있는 그림으로 힐링하시라.

그의 작품들은 말한다. “그냥 빙그레 웃어요. 인생은 아름다우니까!”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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