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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겨울바람이 분다
아직 가을이 오지 않았는데
자연보다 앞서는 마음이란 것도 있으니까

그 마음 때문에
겨울바람이 부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마음이야 흔하디흔하니까

왜 그럴 때 있잖아
쓸쓸한 개 한 마리가 늦은 오후에
이유 없이 창밖을 향해
활활

짖는 것을 보면 도망치고 싶은 거
단란한 살림을 버리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잊히고 싶은 거
한 사람을 애달게 하고 싶은 거
그 모질고 뜨거운 바람에 제각각 이름을 붙이지만
겨울바람이지 부는 바람이지

(하략)

시 속에는 아직 겨울이 오지 않은 모양이다. 아마도 늦여름 즈음? 그러나 지금 여기는 벌써 겨울이고, 12월이고, 한 해의 끝이고. 그러니 겨울바람이 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마음에 세찬 바람이 분다고, 혼잣말처럼 웅얼거린다 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화르르 화르르 겨울바람 부는 소리 불타는 소리”. 남을 태울 수 없어 자신을 태우는 사람의 소리. 타오르는 마음에 바람이 불고, 그 바람에는 분명 각각의 이름이 있을 테지만 지금은 그냥 “겨울바람”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서 잊히고 싶은 마음. 그 바람.

 

어제오늘 창밖에는 눈이 왔다 비가 왔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끊이지 않아 자꾸만 창쪽을 기웃거리게 되었다. 그 모습을 바깥의 누군가 보았다면 얼핏 쓸쓸한 사람 하나 저 속에서 “활활” 소리치고 있다고, 그렇게 여겼을지도.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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