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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볼커의 실수와 파월 피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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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2-14 22:58:48 수정 : 2023-12-14 22: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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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파이터’이자 중앙은행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회자된다. 볼커는 인플레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긴축의 칼을 과감하고 크게 휘두르고 쉽게 넣지 말라”라는 교훈을 남겼다. 그런 그도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1979년 8월 취임하자 오일쇼크 탓에 두 자릿수로 치솟은 물가를 잡으려 기준금리를 연 20%까지 올렸다. 경기침체는 심화했고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그는 3년 후 재선을 노리던 지미 카터 대통령의 닦달에 금리를 9%대로 낮췄다. 물가가 다시 다락같이 올랐음은 물론이다. 볼커는 1985년까지 초긴축을 이어가야 했고 경제 고통을 더 키웠다는 비판(‘볼커의 실수’)을 받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볼커를 자신의 롤모델로 여기고 존경한다. 취임 후 한동안 볼커의 회고록을 들고 다녔을 정도다. 파월은 지난해 9월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면서 볼커의 자서전 제목 ‘버티시라!(Keep at it!)’를 인용해 인플레 파이터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미 연준이 그제 기준금리를 5.25∼5.50%로 동결하면서 내년 중 세 차례 금리 인하를 예고했다. 파월은 “기준금리가 고점에 근접했거나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회의에서 금리 인하도 논의됐다”며 사실상 2년 가까이 이어진 긴축기조의 전환을 시사했다. 시장의 반응은 뜨겁지만 물가와 경기 두 마리 토끼를 잡을지는 미지수다. 한때 9%대까지 치솟았던 물가상승률이 3%대로 낮아졌다지만 목표치 2%에는 미치지 못한다. 파월의 금리정책 전환(pivot·피봇)이 볼커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게 아닌지 우려를 자아낸다.

미 통화정책은 한국의 금리정책과 금융·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오죽하면 한국은행이 정치권력보다 미 중앙은행에서 독립하기가 더 어렵다는 말이 나올까. 미국발 훈풍에 어제 코스피는 1% 이상 급등했고 채권과 원화도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역대 최대인 2%포인트까지 벌어져 환율불안과 자본유출 우려가 가실 줄 모른다. 1900조원대의 가계부채, 급증하는 부실기업 등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아직 긴장을 풀 때가 아니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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