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창구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이 대거 판매되면서 이를 고객에 적절히 고지했는지에 대한 불완전판매 의혹이 커지고 있다. 내년 ELS의 대거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에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는데 은행과 고객들 간 법적 분쟁이 늘어날 전망이다. 은행권의 ELS 상품 판매 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는 금융 당국은 불완전판매가 나타날 경우에 대비한 배상기준안 마련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에서는 은행들의 ELS 판매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도 거론된다.

◆ 배상기준안 검토 나선 금융당국
3일 금융감독원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H지수 연계 ELS의 대규모 손실 및 불완전판매가 인정됐을 경우 배상비율 기준안을 만들어 금융사와 소비자 간 분쟁에 대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에서 민원 사례에 대한 배상비율 기준안을 만들면 이를 근거로 금융 회사들이 자율 조정에 나서는 방식이다.
ELS는 주가지수 등을 기초자산으로 삼아, 만기까지 약속된 범위 내에서 기초자산이 움직일 경우 약속한 수익률을 받을 수 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날 경우 손실이 많이 늘어나는 상품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NH)에서 판매한 H지수 연계 ELS 가운데 내년 상반기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규모는 약 8조4100억원인데, 홍콩 H지수가 폭락을 거듭하면서 ELS에서 약속됐던 범위를 벗어나 큰 손실이 예상된다.
금융 당국에서는 은행이 ELS의 위험성을 제대로 고지하고 상품을 판매했는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ELS와 비슷한 고위험 금융투자상품인 파생결합펀드(DLF) 대량 손실 사태 후인 2019년 11월 금융 당국은 고위험 금융투자상품의 경우엔 녹취·숙려기간·핵심설명서 교부·공시 등 설명 의무를 추가로 부여했는데, 이것이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한 조사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은행에서 ELS를 산 어르신들이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 이런 경우가 많으면 문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최근 일부 은행이 무지성으로 (ELS 관련)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가 마련됐다고 운운하는 것은 자기 면피 조치를 했다는 것으로 들린다”고 말한 바 있다. 은행들은 법에 정해진 절차를 제대로 지켰다고 반박한다. ELS 판매 과정에서 가입상품 위험등급, 원금손실 가능성 등에 대한 이해 여부를 고객으로부터 자필 또는 녹취를 받아 확인을 거쳤고 최종 가입 의사를 확인한 이후에도 수일간 청약 철회 기간을 뒀다는 것이다.
은행이 ELS 판매 과정에서 당국 지도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면, 감독 의무가 있는 금융 당국에도 책임이 갈 수 있다. 금감원은 2021년 말에 강화된 내부통제 절차에 대한 은행 자체 점검을 하도록 했고, 그 결과를 받아 은행별로 미흡한 사항을 개선하도록 했다고 설명한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2019년 이후에 강화한 설명 의무에 따르면, 상품의 이해도나 위험성에 대해 녹취로 진술하든가 직접 손글씨로 쓰는 행위 중 하나가 있어야 하는데 (사례를 보면 소비자들이) ‘네, 네, 네’만 하는 것으로 나온다”며 “녹취를 위한 알리바이성 수단이었는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위험성 고지가) 요식행위였다면, 금감원이 말한 내부통제 강화는 면피성 발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홍콩H지수 연계 ELS의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확산하면서 지수를 추종하는 공모형 ELS 발행 규모는 위축되고 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달 2조1943억원의 지수형 ELS가 발행됐는데, 전월(2조3099억원) 대비 5% 감소한 규모였다. 올해 ELS 발행 규모가 가장 컸던 지난 4월(3조2409억원)과 비교하면 30%가량 줄어들었다. 지수별로는 지난달 기준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2조2245억원)과 유럽 범유럽지수인 유로스톡스(EURO STOXX)50(2조287억원), 일본의 닛케이255(1조2145억원)를 기초자산으로 포함한 공모 ELS 발행이 많았다.
◆주요 은행권 가계대출은 7개월 연속 증가세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이 한 달 새 4조원 넘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690조3856억원으로, 10월(686조119억원)보다 4조3737억원 증가했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올해 5월부터 7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 가고 있다. 증가 폭의 경우 5월 1431억원에서 8월 1조5912억원으로 늘어난 뒤 9월(1조5174억원) 소폭 감소했으나, 10월(3조6825억원)부터 다시 확대되는 추세다.
세부적으로 보면 전체 가계대출 증가세를 이끈 것은 한 달 새 5조원 가까이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다. 11월 말 주담대 잔액은 526조2223억원으로, 전월(521조2264억원) 대비 4조9959억원 급증했다.
주담대 증가 폭 역시 5월 6935억원, 6월 1조7245억원, 7월 1조4868억원, 8월 2조1122억원, 9월 2조8591억원, 10월 3조3676억원 등 계속 확대됐다. 은행권에서는 이사철로 인한 주택 수요와 집단대출 실행 등 실수요 자금 위주로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개인신용대출 잔액은 107조7191억원으로, 전월(107조9424억원)과 비교해 2233억원 줄었다. 신용대출은 지난 10월 6015억원 늘면서 증가세로 돌아섰으나, 지난달 다시 감소로 전환됐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세로 미뤄볼 때 전체 은행권 가계대출도 지난달까지 8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 갔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올해 4월(2조3000억원 증가) 반등한 뒤 지난 10월까지 7개월 연속 불어난 바 있다.
5대 은행의 총수신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1973조9895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보다 4조2708억원 증가했다.
정기예금 잔액은 868조7369억원으로, 한 달 새 12조7627억원이 유입됐다. 정기적금 잔액은 45조1264억원으로 전월(44조3702억원)보다 7562억원 늘었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전체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폭은 둔화추세이며, 5대은행을 포함한 은행권 주담대는 실수요자 대상 정책자금 대출 위주로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1월 중 은행권 주담대 증가액 5조9000억원 중 특례보금자리론, 디딤돌 대출등 정책자금 대출이 4조8000억원이며 은행 자체 주담대는 1조1000억원이었다. 금감원은 잠정집계 결과 11월 중 금융권 가계대출은 2조9000억원 증가했다고 밝혔다.
◆소비 위축 심화…10월 서비스업 생산 0%대 증가 그쳐
최근 도소매, 숙박음식업 등이 부진하면서 지난 10월 서비스업 생산 증가 폭이 전년 동월 대비 기준 32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소매판매도 4% 이상 줄면서 상품 판매 쪽도 위축되고 있다. 고금리·고물가로 실질소득이 줄면서 향후 소비 회복 전망도 밝지 않아 소상공인 등 서민경제의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날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비스업 생산(불변지수)은 전년 동월 대비 0.8% 증가했다. 이는 2021년 2월(-0.8%) 이후 32개월 만에 최저치다.
서비스업 생산 증가 폭은 최근 들어 둔화세가 뚜렷하다. 서비스업 생산은 지난해 3분기 8.5% 증가한 뒤 빠르게 하락해 지난 2분기 2.3%, 3분기 1.9%까지 증가 폭이 축소됐다. 산업별로 보면 숙박음식업 생산은 올해 2분기 7개 분기 만에 마이너스(-2.7%)로 전환했고 3분기(-4.7%)에는 감소 폭이 더 커졌다. 10월에는 1년 전보다 5.2% 감소했다. 도소매업 역시 올해 2분기 1.1% 감소해 10개 분기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3분기에는 1.9% 줄어 감소 폭이 더 커졌다. 10월에는 3.7% 줄며 2020년 8월(-6.4%) 이후 3년2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재화 판매를 의미하는 소매판매도 지난해 2분기부터 6개 분기 연속 줄고 있으며 감소 폭도 확대되고 있다. 10월의 경우 내구재·준내구재·비내구재가 모두 줄면서 1년 전보다 4.4% 감소했다.
전월과 비교해도 소비 상황은 좋지 않다. 10월 서비스업 생산은 전월보다 0.9% 감소해 5개월 만에 감소로 전환했다. 도소매업이 3.3% 줄어 2020년 2월(-3.8%) 이후 3년8개월 만에 감소 폭이 최대치를 기록했고, 숙박음식업도 2.3% 줄어 석 달 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소매판매도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가 3.1% 줄면서 9월보다 0.8% 줄었다. 서비스업 생산과 소매판매가 동시에 감소한 것은 올해 4월 이후 6개월 만이다.
문제는 고금리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물가도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있어 향후 소비 전망도 밝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0.2%(3분기 기준)로 높은 상황에서 먹거리를 중심으로 물가 상승세도 이어지고 있어 민간 소비 여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도 최근 “고금리 영향으로 소비 등 내수 회복 속도가 생각보다 많이 느려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최근 소비 위축이 도소매업·숙박음식업 등을 중심으로 심화하고 있어 소상공인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