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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간병 위해 그만둔 美 '1호 여성 대법관' 오코너 별세

입력 : 2023-12-02 13:06:38 수정 : 2023-12-02 13: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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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레이건에 의해 첫 여성 대법관 발탁
2006년까지 25년간 재임… 다수의견 주도
치매 걸린 남편 돌봐야 한다며 스스로 사퇴

미국에서 여성으로는 처음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오른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이 1일(현지시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한때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휘두른 여성이었으나 생애 말년에는 알츠하이머성 치매에 걸려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은 채 불우한 나날을 보냈다.

 

샌드라 데이 오코너(1930∼2023) 전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 AP연합뉴스

미 대법원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오코너 전 대법관이 애리조나주(州) 피닉스에서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호흡기질환 합병증 등으로 타계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 먼저 사망한 남편과의 사이에 스콧 오코너, 브라이언 오코너, 제이 오코너 세 아들이 있다고 대법원은 덧붙였다. 대법원은 장례식 일정 등 계획이 유족과의 협의를 거쳐 확정되는 대로 공개할 방침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고인은 1930년 텍사스주 엘파소에서 태어났다. 서부의 명문 스탠퍼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고인은 1952년 캘리포니아 주검찰청 검사로 공직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애리조나 주정부 법무부 차관과 주의회 상원의원 등을 지냈다.

 

1981년 애리조나 주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중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관에 임명됐다. 1789년 대법원 창설 이래 거의 200년 만에 탄생한 첫 여성 대법관이었다. 당시 나이는 51세였다.

 

미국 최초의 여성 연방대법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왼쪽)가 1981년 9월 취임식 직후 워렌 버거 당시 대법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고인은 대법원에 재직하는 동안 1993년 빌 클린턴 행정부가 발탁한 ‘2호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2020년 사망)와 곧잘 비교되곤 했다. 뚜렷한 진보 성향인 긴즈버그와 달리 고인은 보수에서 출발해 차츰 중도로 옮겨갔다. 스타 못지않은 대중적 인기를 누린 긴즈버그가 정작 대법원에선 ‘소수파’에 그친 반면 고인은 오랫동안 대법원의 ‘지배자’였다. 진보와 보수가 4 대 4로 팽팽히 맞선 핵심 사건마다 결정적 한 표, 이른바 ‘스윙보트’를 행사했기 때문이다.

 

미국 법조전문기자 제프리 투빈은 대법원 뒷얘기를 다룬 책 ‘더 나인’(2010)에서 고인을 가리켜 “미합중국 역사상 나라 전체에 그렇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여성은 전혀 없었고, 그러한 영향을 미친 남성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고인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6년까지 25년간 대법관을 지내고 스스로 물러났다. 당시 76세로 아직 건강했지만 치매에 걸린 남편 간병을 위해 대법원을 떠나는 길을 택했다. 변호사인 남편은 아내가 대법관이 되자 모든 활동을 접고 외조에만 전념했다. 이에 고인은 “젊은 시절 남편은 나를 위해 다 포기했다”며 대법관을 그만둬야 하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2006년 퇴임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왼쪽) 전 미국 연방대법관이 2009년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의 메달’ 훈장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2009년 남편과 사별한 뒤 고인은 ‘치매 치유 전도사’를 자처하고 미 전역을 돌며 왕성한 강연과 봉사활동을 했다. 하지만 2018년 본인도 치매 진단을 받고 말았다. 그 직후 대법원 앞으로 보낸 편지 형식의 글에서 “치매와 함께하는 삶의 마지막 단계가 나를 시험에 들게 할지 모른다”며 “하지만 축복받은 내 삶에 대한 감사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더는 공개 석상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고인의 타계 소식에 존 로버츠 현 연방대법원장은 성명을 내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서 역사적 족적을 남겼다”고 애도했다. 이어 “법치주의의 수호자, 진정한 공무원이자 애국자로서 고인이 남긴 유산을 영원히 기린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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