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市 기금 지원·민간서 시공… 임대료 상한 둬 ‘주거안정’ 합작 [심층기획-주거안정이 민생안정이다]

, 세계뉴스룸

입력 : 2023-11-24 06:00:00 수정 : 2023-11-23 18:46:16

인쇄 메일 url 공유 - +

(4회) 민관이 함께 고민하는 임대주택
오스트리아 임대주택 르포

지불 가능·적정 수준 주거 핵심 개념
빈 100만호 주택 중 4분의 3이 ‘임대’
진흥기금임대 비중 20%까지 늘어나
사회적 가치 창출 목표 빠르게 발전

노후주택 재건축 때도 진흥기금 지원
임대료 상한·거주권 보장 전제 조건
한 주택에 다양한 배경·연령대 ‘믹스’
자연스러운 세대·계층 혼합도 유도

지난 4일(현지시간) 방문한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싸륵파브릭(Sargfabrik)’ 단지. 이곳은 19세기 말부터 관(棺) 공장 부지였지만, 1985년까지 쓰이다 버려졌다. 그러던 곳이 1996년 임대주택 자리로 변신했다.

단지 입구에 들어서자 공연장이 먼저 나타났다. 각종 공연이 열리면 약 110개 세대 입주자뿐 아니라 외부인도 참석이 가능하다. 단지 안에는 통창이 있는 주거 건물이 보이는데 옥상에는 정원이 꾸며져 있다. 개별 집 사이에는 도서관과 공용세탁실 및 부엌이 있고 유치원과 지하 수영장도 있다. 싸륵파브릭은 원하는 주택을 지어 살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 협동조합을 꾸리고 설계 과정부터 시공사와 의견을 조율해 주민 만족도도 상당히 높다.

‘싸륵파브릭(Sargfabrik)’ 건물 옥상에 꾸며져 있는 옥상정원. 주민들이 바비큐를 할 장비와 일광욕을 할 수 있는 의자, 직접 가꾸는 텃밭 등이 있다.

◆공공의 가치와 민간 시공능력의 ‘합작품’

지불 가능한, 적정한 수준의 주거(affordable housing)는 오스트리아 주거정책의 핵심 개념이다. 오스트리아는 유럽에서도 임대주택이 잘 돼 있는 나라로 꼽힌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부터 노동자 계층의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위생문제 등이 발생하자 정부와 시가 나서 공공임대주택을 지은 게 시작이다. 특히 빈은 시가 주도적으로 토지를 사들이고 도시개발사업을 벌이며 주거지를 확보했다. 이렇게 100여년의 시간이 축적되며 빈 곳곳에는 임대주택이 뿌리내리고 있다.

‘싸륵파브릭(Sargfabrik)’ 주택 내 공용공간 중 하나인 도서관. 맞은편에는 공용세탁실과 공용주방이 있어서 빨래하는 사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

오스트리아 임대주택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공공임대주택 △진흥기금임대주택 △민간임대주택인데, 진흥기금임대주택은 공공과 민간의 사이 형태로 민관이 함께 참여한다. 진흥기금임대주택을 관리하는 오스트리아공익주택협회(GBV)에 따르면 빈에는 약 100만호의 주택이 있는데 이 중 공공임대주택이 22%, 진흥기금임대주택이 21%, 민간임대주택이 33%를 차지한다. 전체 주택의 약 4분의 3이 임대주택인 셈이다.

공공이 온전히 주도하는 공공임대주택과 달리 진흥기금임대주택은 민간시장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을 목표로 1990년대부터 크게 발전한 모델이다. 주택 공급 비중을 보면 오스트리아 전체에서는 1971년 9%에서 2020년 17%로, 빈만 따지면 같은 기간 7%에서 20%로 늘었다.

우리나라도 임대주택이 이와 비슷하게 공공·민간 및 공공지원 민간임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그러나 공급 비율에는 큰 차이가 있다. 23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주택 2192만호의 약 15%인 329만호가 임대주택이다. 이 중 공공임대가 177만5000호(54.0%), 민간임대가 151만5000호(46.0%)를 차지한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은 5만3000호가 공급됐는데 국토교통부 통계상 해당 유형은 따로 분류하지 않아 공공·민간주택 수에 포함돼있다.

오스트리아 진흥기금임대주택은 주정부의 주택진흥기금을 지원받아 민간시공사가 짓는다. 주택진흥기금은 주정부 예산, 국고지원, 세금, 공공임대주택 월세수익 등으로 마련한다. 빈은 진흥기금임대주택 건설 시 시공사에 건설비의 4분의 1에서 3분의 1 정도를 일반 대출보다 훨씬 저리로 장기 대출해준다. 이자율은 1% 수준이며 대출상환 기한은 최대 35년으로 은행(최대 25년)보다 길다. 여기에 부지 매입 비용도 상한을 둔다.

이 대가로 시는 상환을 마치기 전까지 임대료 상승을 제한한다.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는 방식은 시공사의 수익 제한이다. 건설을 마친 뒤에서 기업은 순이익을 3% 이상 남길 수 없고 이외 영업이익은 재투자하도록 법률로 명시했다. 저리 대출로 건설비를 저감해주는 대신 시공사 수익을 제한하는 방식을 ‘수익 제한 주택(Limited Profit Housing·LPH)’이라 부른다. LPH 발달로 빈에서는 여러 사회적기업이 성장했고 동시에 시는 주택물량을 확보하고 주택가격 안정도 꾀할 수 있다.

◆더 다양하게 뒤섞인 주택을 목표로

주택진흥기금은 노후주택 재건축 지원에도 쓰인다. 긴 임대주택 역사만큼이나 낡은 주택이 생기면서 민간임대주택까지 진흥기금을 지원한다. 대신 두 가지 조건이 있는데 △민간임대주택이라도 재건축 후 임대료 상한 적용 △기존 세입자의 거주권 보장이다. 모두 주거안정을 최우선으로 한 요구사항이다.

통상 1㎡당 월세는 공공임대주택 7.4유로(약 1만500원), 민간임대주택 10.2유로(약 1만4500원)이며 LPH인 진흥기금임대주택은 7.7유로(약 1만900원)로 민간주택보다 약 25% 저렴하다.

게랄드 쾨셀 오스트리아공익주택협회(GBV) 주택연구관이 지난 6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 빈 임대주택 유형별 공급 비율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게랄드 쾨셀 GBV 주택연구관은 “임대료에 상한을 적용하면 주민 삶의 질이 개선될 수밖에 없다”며 “월세에 돈을 적게 쓰면 그 돈을 다른 곳에 지출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공이 관여한 주택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고 최근에는 민간임대주택까지 3년 이상 거주하면 다음 계약부터는 무기한 계약을 맺을 수 있는 제도가 생겼다”며 “이런 제도로 주거안정을 더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가 주택 건설에 관여하는 만큼 주택을 어떻게 공급할지뿐 아니라 누구에게 공급할지도 고민하고 있다. 한 주택에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도록 인위적인 소셜믹스를 지향한다. 예컨대 1층에 상가, 저층부 학생, 중층부에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임대하고 고층부는 고소득층을 노린 고급주택을 짓는 식이다. 이윤 확보도 되는 동시에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대학생과 노인, 어린 아이를 키우는 신혼부부가 한 단지에 모여 사는 자연스러운 세대·계층 혼합이 가능하다. 어느 임대주택이 특정 계층의 상징처럼 편견이 생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임대주택 ‘손벤트피어텔(Sonnbendviertel)’ 단지 안으로 들어가면 보이는 모습. 각 동은 서로 연결돼 있어 주민 간 이동을 편리하게 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수십 년째 임대주택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이병훈 건축가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세를 주는 임대주택인데 맨 위층에는 비싸게 분양하는 펜트하우스를 만들기도 한다”며 “빈 전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공이 관여해 행정과 정치가 힘을 합치면 가능한 소셜믹스”라고 말했다.

‘손벤트피어텔(Sonnbendviertel)’ 건물 중 하나로 맨 위층에는 펜트하우스를 만들어 분양했다. 오스트리아 임대주택 대부분은 다양한 계층이 섞여 사는 소셜믹스를 표방한다.

싸륵파브릭과 손벤트피어텔을 디자인한 프란쯔 쑴니츠 BKK-3 건축가는 주거문제 해결에 ‘정치’를 강조했다. 쑴니츠 건축가는 “정치가 주거 방식, 주택 건설·공급 방식, 나아가 사회 조직 방식을 결정한다”며 “개인이 자기 주거를 위해 싸우게 할지, 다양한 형태의 임대주택 공급 구조를 만들지는 모두 정치의 영역이며, 정책 결정자가 이 역할을 하지 않으면 결국 민간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빈=글·사진 박유빈 기자 yb@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최지우 '완벽한 미모'
  • 최지우 '완벽한 미모'
  •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츄 '상큼 하트'
  • 강지영 '우아한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