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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세 타히티 참전용사 별세에 프랑스가 애도를 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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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0-21 10:43:47 수정 : 2023-10-21 10:4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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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때 태평양 섬 떠나 '자유 프랑스' 합류
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랑스 남부 등에서 활약
마크롱 "나치즘에 맞서 프랑스 가치 지켜냈다"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점령된 1940년 프랑스 본토로부터 1만7000㎞가량 떨어진 태평양 타히티 섬에 “나치와 싸워야 한다”며 분연히 일어선 청소년이 있었다. 당시 고작 16살로 군대에 입대할 나이가 아니었으나 형의 신분증을 도용해 의용군이 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유 프랑스 군대의 일원으로 싸운 아리 웡 킴(Ari Wong Kim)의 사연이다.

 

20일(현지시간) 프랑스 국방부 및 프랑스 언론들에 따르면 레종 도뇌르 훈장 수훈자인 아리 웡 킴이 19일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은퇴 후 최근까지 노르망디 지역의 한 요양원에서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태평양 타히티 섬 주민으로 2차대전 당시 자유 프랑스 군대에서 싸운 아리 웡 김의 젊은 군인 시절 모습(왼쪽). 오른쪽은 은퇴 후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요양원에서 지낼 때의 사진. 마크롱 대통령 SNS 캡처

아리 웡 킴은 프랑스의 식민지이던 타히티 섬에서 태어났다. 오늘날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중심인 타히티 섬은 우리에겐 프랑스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이 오랫동안 머물며 숱한 명작을 남긴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40년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이 타히티 섬에도 전해졌다. 샤를 드골 장군은 영국 런던에 자유 프랑스 조직을 결성하고 세계 곳곳의 프랑스인들에게 동참을 호소했다. 이에 부응해 태평양의 타히티 섬과 누벨칼레도니 섬에 살던 주민 약 300명도 고향을 떠나 의용군에 합류했다. 이들은 훗날 ‘태평양 대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당시 16살의 아리 웡 킴도 태평양 대대의 일원이 되었다. 형의 신분증을 도용해 입대한 터라 상관이나 동료들은 그의 실제 나이를 알지 못했다. 호주에서 군사훈련을 마친 태평양 대대는 이듬해인 1941년 지중해 인근 시리아로 보내진다. 프랑스 위임통치를 받던 시리아는 자유 프랑스 군대의 주된 근거지 중 하나였다.

 

1942년 상반기 태평양 대대는 아프리카 리비아의 사막에서 나치 독일군에 맞서 싸웠다. 특히 비르하킴 전투(1942년 5∼6월)는 태평양 대대를 포함한 자유 프랑스 군대가 병력과 무장 면에서 월등한 독일군을 상대로 용맹하게 싸워 큰 전과를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아프리카에서 많은 병력을 잃은 태평양 대대는 재편성을 거쳐 1944년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됐다. 같은 해 8월에는 연합군의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상륙작전에 참여했다. 아리 웡 킴은 이탈리아 전투와 프로방스 상륙작전에서 모두 부상했다. 일본의 항복으로 2차대전이 완전히 끝난 뒤인 1946년 5월 5일에야 아리 웡 킴을 비롯한 태평양 대대의 생존 부대원들은 타히티 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시 섬의 모든 상점들이 이틀 동안 영업을 중단하고 이들의 귀환을 축하하는 동시에 전사자들을 기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아리 웡 킴은 남은 생을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보냈다. 어느덧 태평양 대대에서 싸운 의용군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로 남게 됐다. 2020년 그는 2차대전에 참전한 공로로 프랑스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아리 웡 킴의 별세 소식을 들은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고인은 겨우 16세 나이에 나치즘에 맞서 프랑스의 가치를 지키고자 태평양 대대에 입대했다”며 “고인과 그 형제들이 프랑스 공화국을 위해 무장한 점에 커다란 존경을 표시한다”고 밝혔다. 타히티 섬을 비롯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선 프랑스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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