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 목동 의료진 구속 언급하며
“치료 전념하게 사법리스크 해소”
2024년 총선 앞두고 의료계 대립 부담
의료개혁 일정표 단계적 추진하되
여론 수렴 통해 공론화 더 거칠 듯
교육부, 지방대 육성 방안 밝혀
서울대 신입생 미등록률 10.3%
치의·간호·수의대 의약계열 높아
“의대 쏠림 현상 심각” 지적 나와
윤석열 대통령은 19일 “저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는 개념이 아니라 보건 의료 서비스 강화와 바이오헬스 분야의 고도 산업적 성장을 이뤄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전략을 갖고 (보건의료 분야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전국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파격적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토대로 현재 의료계와 논의하고 있다. 다음 달 2일로 예정된 복지부·의협의 의료현안협의체 논의에서 구체적 증원 규모가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지역 완결적 필수 의료 혁신전략’ 회의 마무리발언에서 의료개혁의 핵심 쟁점인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과 추진 의지를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지역 필수의료 체계 정상화는 제 대선 공약이자 국정과제였고 정부 출범 초기부터 (내부 작업을) 시작했다”며 “결국 이 문제의 필요조건이 의사 수 확대라서 (발표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고, 올해 초부터는 제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보기만 하면 ‘어떻게 돼 가느냐’고 독촉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사가 부족하고 (의사가) 더 있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의료 개혁의 필요조건”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왜 필수진료 부분인 소아과에 의사가 부족한가”라며 반문하며 “저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이대목동병원 사태 같은 게 작용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2017년 이대목동병원 중환자실 인큐베이터에 있던 미숙아가 사망해 의료진이 구속됐지만 추후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윤 대통령은 “의사가 환자 치료와 관련해 늘 송사에 휘말리고 법원, 검찰청, 경찰서를 왔다 갔다 하게 되면 돈을 아무리 준다고 해도 하겠느냐”며 “정부가 책임보험 시스템을 잘 만들어서 일단 형사적 리스크를 완화해줘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교통사고의 경우 보험을 들면 일단 형사 처분을 안 하지 않느냐. 보험 회사와 피해자 대리인 사이의 송사로 넘어가야지, 병원과 의사가 개입돼서는 환자 치료에 전념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 “예를 들어 뇌수술 전문가인데 사법처리될 만한 비리를 저질렀고, (그 의사가) 뇌수술을 해서 살려야 할 생명이 줄 서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한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의료인을 확대할 경우 대학이 가르칠 수 있는 인프라를 점검해 정부가 투자하는 것도 함께 가야 한다”며 의대에 대한 투자도 약속했다.
다만 구체적 증원 규모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의사 증원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던 윤 대통령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의료계와 대립각을 세워서는 안 된다는 참모들 조언을 고려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민을 위한 정책 효과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현장 의료인, 전문가들과 우리 정부는 충분히 소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내부적으로 진료과목 및 시기별로 부족한 의사 인력과 양성 방안 등에 관한 다양한 안을 검토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의료계와 협의 및 국민여론 수렴 등 조금 더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에 힘이 실린 것으로 보인다. 필수의료 공백 및 지역 의료 인프라 격차 완화를 위해 의대 정원 대폭 확대라는 ‘채찍’과 함께 수가 인상과 국립의대 지원 확대라는 ‘당근’까지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대한의사협회 등의 반발을 고려해 의대 정원 확대 및 의료개혁 로드맵(일정표)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뒤탈이 없을 것으로 판단해 구체적 증원 규모 발표를 이달 말, 다음 달 초로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통화에서 “의대 정원 확대 문제는 우리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당위성과 절박함을 갖고 추진하고 있다”며 “다만 파급력이 큰 이슈인 만큼 의료계와의 소통과 여론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안은 내년 4월이 ‘마지노선’이다. 보건의료계에선 최소 351명부터 521명, 1000명, 1200명, 1300명 등의 구체적 증원안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인원이나 발표 시기 등에 대해서는 정해진 게 없다고 계속 말해왔는데 지금도 그렇다”며 “(의대 정원 관련) 주무부처인 교육부가 내년 초까지는 구체적 인원 배정을 해줘야 한다고 해 일정 등에 대해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 땐 지역인재 선발 40→ 50% 확대 검토”
전국 의대의 지역인재 선발 확대 방침과 관련해 교육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조건으로 현재 최대 40%인 지역인재선발 전형 비율을 50%까지 늘릴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19일 “지방대육성법에 따라서 금년부터 비수도권 의대 등 의·치·한의학 계열에서는 지역인재를 40%로 뽑도록 하고 강원·제주만 20%, 간호계열의 경우 비수도권은 30%, 강원·제주는 15% 의무화가 돼 있다"고 설명했다. 장 차관은 “비수도권 대학 의대 같은 경우에 26개 학교인데 24개 학교가 의무화 비율을 지켰고, 평균적으로 52% 정도의 지역인재 입학 비율을 달성했다”고 덧붙였다.
장 차관은 “지금 당장 (의대 지역인재 선발 전형 비율을) 50%까지 확대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은 있지만 또 이게 의대 정원 증원이 된다면 그것하고 연동해서 검토돼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가급적이면 지역 인재들이 새롭게 증원되는 정원에 있어서도 더 많이 입학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향성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대입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최근 3년간 서울대 이과계열 최초 합격생 10명 중 1명가량이 등록하지 않았는데 치의대, 간호대, 약대, 수의대 등의 순으로 미등록률이 높았다. 이들 단과대 미등록자의 상당수가 다른 대학 의대에 진학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대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서동영 의원에게 제출한 ‘2021∼2023학년도 서울대 신입생 최초합격자 중 미등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대 수시·정시모집 최초합격자(3315명) 중 미등록한 학생은 322명(미등록률 9.71%)이다. 서울대 최초합격자 중 미등록자는 2021학년도엔 모집인원 3245명 중 275명(8.47%), 2022학년도에는 3310명 중 421명(12.72%)이었다. 최근 3년간 평균 미등록률이 10.3%인 셈이다.

서울대 단과대학별로 최초합격자의 미등록률을 살펴보면 의약학 계열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2021∼2023학년도 평균 미등록률이 높은 단과대학은 치의대(34.15%), 간호대(26.78%), 약대(20.18%), 수의대(18.92%), 농생명과학대(16.98%) 등의 순으로 높았다. 의대의 미등록률은 0%였다. 서동영 의원은 “이른바 대학 진학 목표가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로 바뀌면서 서울대 치대, 약대 등 의약학계열에 합격한 최상위권 학생들마저 다른 대학 의대로 이탈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의대 쏠림 현상은 서울대 자퇴생 규모에도 반영돼 있다. 2019년 한 해 자퇴한 서울대생은 2019년 193명이었는데, 2022년에는 328명으로 1.7배 증가했다. 최근 4년간(2019∼2022년) 자퇴생이 많은 서울대 1∼3위 단과대학은 공대(328명), 농생명과학대(277명), 자연대(152명)였다. 서 의원은 “이공계열 안에서도 ‘의대’로만 쏠리는 현상을 계속 방치했다가는 학문을 넘어 산업과 경제까지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며 “인구 사회구조의 변화에 맞는 인재 양성 목표에 맞춰 균형 있는 인재 양성 정책수립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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