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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들로 놀면서 공부… 학생 수 적어 수업 질 되레 ‘업’ [기획]

입력 : 2023-10-10 06:00:00 수정 : 2023-10-10 10: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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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유학’ 프로그램 인기
위기 농촌학교, 학생 유입에 함박웃음
교우관계 향상에 합반→분반수업 변화
유학생들 계곡서 물놀이 등 ‘추억쌓기’
플루트 등 다양한 방과 후 프로그램도

가족체류·농가 형태 6개월 동안 진행
첫 시행 강원도에 초등생 33명 참여
“여유로움 만끽… 졸업까지 지내고파”
도교육청, 내년 중학생도 확대 운영

팬데믹 때 시골학교 대안 가능성 엿봐
교육·지역경제 상생 선순환 구조 목표
생태환경교육 등 특화… 학생 유치 매진

“층간소음 우려로 늘 뛰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줘야 했습니다. 농촌학교에 온 뒤로는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있습니다.”

지난달 초등학교 1학년 아들 정재영군과 2학년 딸 정아인양을 데리고 강원 홍천군 서석면 작은 학교인 삼생초등학교에 유학 온 정우현(48)·김은실(45)씨 부부는 농촌유학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에 사는 정씨 부부가 농촌유학을 선택한 이유는 오로지 자녀들이다. 특히 FC서울 산하 축구단에서 선수로 뛰는 아들 정군이 마음껏 뛰도록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학생들이 학교 뒷산에 마련된 캠핑장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정씨 부부는 농촌유학 프로그램 공고를 보자마자 별다른 고민 없이 지원했다고 했다. 정씨가 재택근무 가능한 외국계 기업에 다니고 있어 결정이 수월했다. 정씨 부부는 강원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삼생초에서 멀지 않은 캠핑장에 거처를 마련했다. 도교육청은 가족이 함께 이주하는 경우 자녀 1명 60만원, 2명 80만원, 3명 100만원, 4명 120만원을 각각 지원한다. 지원금은 주택 임차비용으로 사용된다.

농촌유학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평소 캠핑을 즐겼던 정씨 부부에게도 만족스러운 선택이 됐다. 아내 김씨는 “매년 제주에서 한 달 살이를 했고 주말이면 캠핑을 떠났는데 농촌유학을 온 뒤로는 매일이 캠핑”이라며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 뒤에 있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한다. 서울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 질 우려했지만 소수정예 장점

초등학생인 두 자녀와 삼생초로 온 또 다른 가족인 이제광(45)·오현지(43)씨 부부도 농촌유학에 만족한다고 입을 모았다. 처음엔 서울과 비교해 교육의 질이 떨어질까 우려했지만 기우였다. 아내 오씨는 “삼생초 1학년은 딸을 포함해서 2명이 전부다. 그야말로 소수정예라서 선생님이 아이들 수준에 맞춰 가르쳐준다. 오히려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서울은 인기 있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 등록하려면 경쟁이 치열하고 비용도 꽤 들어가는데 삼생초는 모두 무료”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악기의 경우 고가인데도 학교에서 새로 마련해줬다. 플루트나 베이스처럼 접하기 쉽지 않은 악기를 배울 수 있어서 좋다”며 “학교 친구들과 대회에 나갈 준비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물총놀이를 하고 있다.

삼생초 방과 후 프로그램은 실력도 수준급이다. 전교생이 참여하는 리코더 동아리는 지난 8월 열린 제21회 전국 리코더 콩쿠르에 참가해 초·중·고·일반을 대상으로 한 합주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오씨는 오후 4시까지 수업과 방과 후 교실이 이뤄지는 점과 스쿨버스로 자녀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학교 수업이 오후 1시30분이면 끝나는 서울에서는 자녀들을 데리고 학원에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롯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업무에 도움이 많이 된다.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지는 것 같다”며 “내년도 1학기에 연장을 신청해서 더 머물 계획이다. 가능하다면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내고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분반수업 가능…“친구 많아져 좋아”

농촌유학 프로그램은 유학 온 아이들뿐만 아니라 농촌학교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이다. 전교생이 19명에 불과한 삼생초의 경우 학생 수 감소에 따라 교사 1명이 다른 학교로 전근 가야 할 상황이었지만, 지난 9월 서울에서 4명이 유학 오면서 오히려 교사가 1명 늘었다. 이에 따라 한 반에서 수업을 듣던 1·2학년이 분반 수업을 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삼생초 학부모회장을 맡고 있는 이치하라 요시미(43·일본)씨는 “삼생초를 졸업하고 지금은 중학생 1학년이 된 큰딸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졸업할 때까지 동갑인 친구가 2명뿐이었다. 그래서 늘 친구들이 전학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며 “초등학교 5학년인 둘째와 3학년인 셋째는 농촌유학 덕분에 친구가 많아져서 좋다고 한다. 더 많은 아이들이 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삼생초는 내년에 농촌유학생 규모를 늘려 현재 합반 수업을 하는 3·4학년을 분반할 계획이다. 최소영 삼생초 교무부장은 “학부모를 비롯한 지역주민 모두 학교가 살아야 마을이 산다는 생각으로 농촌유학 온 부모님과 아이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며 “농촌학교에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하고 교사들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강원 홍천군 서석면 삼생초등학교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별빛축제'가 열린 가운데 학생과 학부모들이 체육활동을 하고 있다.

◆내년도 중학교로 확대, 지역 활성화 기대

강원도교육청은 앞서 지난 7월 서울시교육청, 영월군과 ‘농촌유학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농촌유학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서울시교육청이 가정통신문을 발송하면 유학생과 학부모가 희망하는 농촌학교에 직접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학교 면담을 통해 최종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도교육청은 자녀수에 따라 경비를 지원한다.

서울지역 초등학교 1~5학년이 대상이다. 농촌유학은 1학기(6개월) 동안 진행되며 1학기에 한해 연장이 가능하다. 유학형태는 가족 전체가 이주하는 가족체류형, 학생이 학교 인근 농가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생활하는 농가홈스테이형, 법인 단체에서 활동가의 보살핌을 받는 유학센터형 등 3가지로 나뉜다.

시행 첫해인 올해 2학기에는 총 33명이 강원지역 초등학교에서 농촌유학에 참여하고 있다. 영월군 녹전초·옥동초에 18명, 홍천군 삼생초·원당초에 7명, 인제군 용대초에 1명, 춘천시 송화초에 6명이 각각 유학 중이다. 춘천 송화초만 농가홈스테이·유학센터형이고 나머지 학교는 모두 가족체류형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 뒷산 캠핑장에서 야영하고 있다.

도교육청은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학교를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교육을 이유로 학생들이 강원도를 떠나지 않고 오히려 찾아오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학생과 가족이 정착한다면 지역소멸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농촌유학이 지역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일부 지자체는 지원에 나서고 있다. 영월군은 교육과정 운영비 명목으로 농촌유학에 참여하는 초등학교 1곳당 1억원을 지원 중이다. 인제군은 강원도에서 예산을 받아 자체적으로 농어촌유학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구철진 교육자치분권담당 장학사는 “내년에는 초등학교 18곳, 중학교 2곳으로 확대해 운영할 방침이다. 현재 유학 중인 아이들까지 포함해 150여명 규모가 될 것”이라며 “지자체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지난 8월 도내 18개 시·군 교육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여는 등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경호 강원도교육감. 강원도교육청 제공

◆신경호 강원도교육감 “농촌학교 유학 활성화 해 지속가능성의 상징 만들 것”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과 지역경제가 상생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습니다.”

신경호 강원도교육감은 9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 농촌학교는 소외된 교육, 지역소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농촌유학 활성화로 농촌학교를 지속 가능성의 상징으로 변화시키려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 교육감은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하던 시기 농촌유학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바이러스 전염 우려로 서울 등 대도시 학교는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했지만 학생 수가 적은 강원도 농촌학교는 등교수업을 유지하던 때다.

 

신 교육감은 “등교하고 싶은 수도권 아이들에게 농촌학교가 교육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농촌학교의 이점을 경험한 학생과 학부모들이 귀농·귀촌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농촌유학 프로그램을 시작한 배경을 설명했다.

 

농촌유학의 효과에 대해 신 교육감은 “강원도 농촌학교 학생들은 학생 수 부족으로 복식학급에서 공부하고 있다. 체육활동이나 토론 수업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학생 수가 늘면 학교 내에서 특성화된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며 “지역적 배경이 다른 친구들과 만나게 되면서 사회·문화적 역량도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촌학교로 유학 온 서울 학생들이 맛볼 장점도 많다고 했다. 그는 “대도시 학생들은 그간 경험하지 못한 자연친화적 환경에서 소중한 교육적 경험을 하게 되리라고 본다”며 “이는 생태 감수성은 물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의식을 갖춘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신 교육감은 “강원도에는 학교 가는 길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농촌학교들이 많다”며 “앞으로 생태환경교육 등 지역 기반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특화해 학생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홍천=글·사진 배상철 기자 b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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